[사설] 원칙, 순서 잘못된 금융지주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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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적자금을 신청한 한빛.평화.광주.제주은행 등 4개 은행이 그제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독자생존 불승인 판정을 받음으로써 내년 2월께 출범하는 정부 주도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편입하게 됐다.

금융지주회사는 2차 금융구조조정의 핵심이며, 엄청난 부실채권과 지나치게 낮은 생산성 등 문제점 투성이인 국내 금융기관을 개혁하는 한 수단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금융지주회사 설립은 원칙과 순서의 두 가지 면에서 잘못됐다. 지주회사 제도는 금융기관의 과잉 인력과 점포 등 과다 금융현상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방안이긴 하다.

지주회사가 금융기관들의 사령탑인 만큼 경영을 잘하면 인원.점포의 통폐합과 매각이 가능하며 전산 등 중복 투자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과잉금융 해소를 위해선 금융기관을 청산하거나 합병시키는 게 훨씬 강력한 대안이다. 특히 부실의 책임을 져야 할 은행을 청산하거나 합병시키기는커녕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까지 투입하면서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살려주는 것은 '책임성' 의 원칙에 어긋난다.

지주회사 설립 추진 순서도 잘못됐다. 정부는 부실은행들로 지주회사를 설립하기에 앞서 지주회사를 어떻게 만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부터 먼저 따져야 했다.

지주회사의 성격과 자회사 구성, 자회사간의 관계 설정 등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도상연습까지 했어야 하는데도, 금융지주회사 발표부터 먼저 해놓고 구체적 사안들은 실무대책반에서 향후 논의하기로 했다.

일의 순서가 거꾸로 되니 평화은행 등은 독자 지주회사를 추진하기로 하는 등 혼선이 일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왕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기로 한 만큼 지금이라도 서둘러 가장 효율적인 지주회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먼저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래야만 부실은행을 모두 묶어야 하는지, 부실 종금사와 보험사도 편입시켜야 하는지 등에 대한 해답이 나오고, 지주회사상(像)에 걸맞은 경영진의 자격 요건이 나온다.

더불어 정부는 향후 부실금융기관 정리 과정에서 '원칙적 청산, 예외적 회생' 자세를 반드시 견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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