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짜증' 인구 센서스…민원 속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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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5년 만에 실시되고 있는 인구주택 총조사(센서스)가 준비소홀과 조사요원 부족으로 일부 지역에서 심야방문.대리조사 등 무리하게 진행돼 민원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사전 홍보가 제대로 안된 탓에 일부 가구는 조사에 불응하는 등 주민들의 협조가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아 21세기 국가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가 부실해질 우려마저 낳고 있다.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전국 1천5백여만가구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이번 조사에는 14만5천여명의 조사원이 투입됐다.

◇ 민원 실태〓李모(43.주부.대전시 유성구 도룡동 대덕연구단지 W아파트)씨는 지난 2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아파트 경비원이 조사표를 나눠주며 "빈 칸을 기입한 뒤 관리사무소로 가져오라" 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李씨는 즉각 해당 구청에 항의 전화를 했다.

얼마 후 담당 조사원은 전화를 걸어와 "원래 직접 가정을 방문해 조사표를 작성토록 돼 있으나 연구단지 내 주민 대부분이 고학력자들이어서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될 것 같아 경비원에게 맡겼다" 는 어이없는 해명을 했다.

김효재(서울 관악구 신림2동)씨는 최근 통계청 홈페이지(http://www.nso.go.kr)에 "오전 2시에 조사원이 30여개의 방을 둔 원룸주택에 예고도 없이 방문해 소동이 벌어졌으며 결국 주민 신고로 경찰이 출동한 끝에 잠잠해졌다" 며 "조사원들이 기본 교육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고 항의했다.

통계청 무료 상담전화(080 - 527 - 2000)에는 지난 1일 이후 전국에서 센서스 관련 민원전화가 하루 평균 7천여통이 걸려 오고 있는데 이 중 항의성 전화가 40%를 차지하고 있다.

◇ 시민협조 부족〓조사의 중요성에 비해 시민들의 협조가 부족하다는 게 조사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너댓 번을 찾아가야 겨우 조사가 되는가 하면 잡상인 등으로 오해받아 문전박대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 맞벌이 주부가 증가해 주간에 빈 집이 늘어난 점도 조사가 어려운 이유의 하나로 꼽힌다.

조사원 이지은(李智恩.38.주부.대전시 서구 둔산동)씨는 "하루에 두세 차례 방문해도 끝까지 조사에 불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며 "비밀 보장이 되는 만큼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 말했다.

통계청 종합민원상담실 사무관은 "특히 대도시에서 조사에 불응하는 가구가 적지 않다" 고 지적했다.

◇ 문제점〓통계청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조사항목을 1995년 조사 때의 28가지에서 이번에는 50가지로 늘렸으나 조사 기간은 종전과 마찬가지인 10일이어서 충실한 조사를 위해서는 시일이 짧은 실정이다.

특히 조사요원 교육을 각 지자체가 맡아 1주일간 실시했으나 늘어난 조사항목 등에 비해서는 충분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다는 지적이다.

조사원들이 조사 방법을 잘 몰라 통계청에 문의하는 사례가 하루에 2천여건이 되는 것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충남도의 한 관계자는 "조사원 한 사람이 10일간 1백20(단독주택)~1백80가구(아파트)를 직접 방문해야 할 정도로 일이 많아 충실한 조사가 어려운 게 사실" 이라고 실토했다.

이에 대해 통계 전문가들은 "조사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는 조사기간을 15일 정도로 늘리든지 부족한 조사요원을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대전=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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