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아이팟에 사물놀이 접목한 최영준 서울예술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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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0일 서울예술대학 경기도 안산 캠퍼스에서 열린 졸업작품 발표회장. 디지털아트학부의 남녀 졸업반 학생 다섯 명이 애플의 인기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을 들고 무대 위에 올라왔다. 연주그룹 이름은 ‘디지타’. 디지털 타악기의 줄임말이다. 아이팟을 손으로 두드리니 꽹과리·징·북·장구 소리가 터져 나와 아름다운 화음을 이뤘다.

‘디지타’ 결성의 산파역은 디지털아트학부의 최영준(41·사진) 교수다. 그는 지난해 6월 학교 게시판에 느닷없이 ‘돈 벌자’라는 구호를 띄웠다. 애플의 앱스토어에 참신한 문화예술 콘텐트를 올려 새로운 공부와 실험을 하면서 대박을 꿈꾸자는 취지였다. 몇몇 학생이 그 아래 모여들었다. 아예 졸업작품전을 이걸로 하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최 교수는 “첨단기술이 예술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대중과 예술의 간격을 좁히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영준 교수의 이력은 이채롭다. 본업은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교수지만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이기도 하다. 한때 게임업체 사장도 했다. 1994년 국내 대학의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게임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다 이듬해 아동용 게임 회사를 차렸다. 그러다 어린 시절부터 꿈꾼 음악을 하겠다고 97년 29세에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버클리음대에서 재즈와 뮤직 테크놀로지를 공부하고 브라운대에서 미디어아트로 석사를 했다.

미국 유학 이후 재즈피아노 교본과 컴퓨터 음악 관련 서적을 7권 펴냈다. 그의 저서는 여전히 교보문고의 재즈피아노 교본 분야 1, 2위를 다툰다. 2002년 귀국한 뒤 한양대·상명대 등에서 디지털 음악을 가르치는 강사생활을 했다. 디지털 국악 밴드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를 결성해 팀 리더로도 활동 중이다. 3집 음반까지 내는 와중에 틈틈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앱스토어에 올린다. 그의 국악 애플리케이션은 앱스토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브라질 등지에서 ‘목탁 소리를 구할 수 없느냐’는 e-메일이 날아오기도 한다. 전자 해금과 전자 가야금도 개발했다. 전자 악기들은 소리의 울림이 커서 전통 악기로는 불가능한 피치카토 주법이 가능하다. 전자 기술이 전통 악기와 결합해 연주기법이 더욱 풍부해지고 있다.

최 교수는 대학생 시절 피아노 연주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려고 오후 5시면 열리는 야간업소 인력시장에 자주 나갔다. 하지만 노래방 기계가 나오면서 인력시장을 기웃거리던 연주자들은 졸지에 실직자가 됐다. 특히 드럼 연주자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그는 “기술의 발전을 등한시하다간 예술가도 먹고살기 힘들어지는 시대다. 기술을 적극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아이팟용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게 한 최 교수는 이번엔 삼성전자 스마트폰 옴니아용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보도록 권유하고 있다. 앞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의 운영체제(OS)가 대세의 한 축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본이 전통 악기를 전자식으로 개발한 것이 이미 20년 전이다. 미국은 50년이 됐다. 이 때문에 일본의 전통 악기 고토 등의 소리는 이미 세계표준음원으로 등록됐다.

“한국의 교육은 전통 복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편이죠. 그래선 대중화가 어렵고 발전도 더딥니다. 전통 문화와 기술의 융합이 시급합니다.”

세계적 히트작인 ‘아바타’엔 무대가 없다. 영화배우들은 파란 천을 앞에 놓고 가상의 상대를 상상해 연기한다. 컴퓨터 그래픽이 영화의 절반 이상이다. 영화뿐 아니다. 요즘 연극 무대감독은 발광다이오드(LED) 장치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망치와 못으로 무대를 만들던 시대는 지났다. 최 교수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은 새로운 기회를 줍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면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신천지가 펼쳐질 수 있어요.”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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