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의 묘, 성공한 대통령의 리더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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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호 35면

취임 1주년을 맞이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불과 1년 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열렬한 지지와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취임 선서를 하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경제는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야심 차게 시작한 건강보험제도 개혁은 의회 내에서의 소모적인 정쟁에 휘말려 그 귀추가 불분명하고, 아프가니스탄 전황 역시 갈수록 불안하다.

결국 지난해 11월 치러진 버지니아와 뉴저지 주지사 선거, 1월 19일 치러진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 선거를 공화당 후보들이 휩쓰는 ‘이변’이 일어났다. 버지니아·뉴저지 주는 2008년 대선 때 압도적으로 오바마 후보를 지지했고 이번에 물러나는 현직 주지사들도 모두 민주당 출신이다.

특히 매사추세츠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주로 손꼽힐 뿐더러 이번 선거는 미국 진보 진영(liberal)의 우상인 고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타계로 공석이 된 자리를 메우는 선거였다. 그런데 불과 석 달 전까지 여론조사에서 25%포인트 이상 앞서가던 민주당 후보 마사 코우클리 주 법무장관이 주민들에게 이름조차 생소하던 스콧 브라운 공화당 후보에게 패배해 민주당의 아성을 내주고 말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민주당이 이 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상원 의석 수가 59석으로 줄어들어 소수당인 공화당의 필리버스터(고의적 의사진행방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60석을 잃게 됐다는 사실이다. 고 케네디 상원의원이 평생 동안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정책은 건강보험 개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를 공화당에게 내줘 건보 개혁 법안 통과 자체가 불확실해진 것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던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렇게 참패한 것은 오바마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대통령 개인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그러나 그의 영도하에 미국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미 국민은 심히 불안해 하고 있다. 이에 따라 11월 2일 중간선거를 앞둔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평범한 연임보다 훌륭한 단임 대통령이 되겠다”는 비장한 발언마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의 입장에서 볼 때 11월 중간선거의 결과는 비록 장담할 수 없지만 2012년 재선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과거에 레이건과 클린턴도 취임 후 치러진 첫 중간선거에선 참패했지만 재선에 성공했고 가장 성공한 대통령 중 한 명이 됐다. 그렇기에 요즘 미국의 정치평론가들은 부쩍 레이건과 클린턴 얘기를 많이 한다. 그렇다면 이들 두 전직 대통령은 어떻게 초반의 실패를 만회하고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나.
그것은 그들이 타협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우선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 중간선거 참패 후 자신의 진보적인 이데올로기를 대폭 희석시켰다. 소위 ‘제3의 길’을 주창하면서 그전까지 보여준 급진적인 자세를 버리고 ‘중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임기 초반에 밀어붙이던 건보 개혁을 포기하는 대신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와 타협점을 찾으면서 노동자·여성·흑인·히스패닉계 등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의 권익을 찾아주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런 전략이 성공한 덕에 그는 재선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민주당 내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반면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의 전매특허인 시장주의와 반공주의 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82년 중간선거 패배 후 국정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정해 대내적으로는 경제회생, 대외적으로는 소련과 냉전을 치르는 데 전력투구했다. 그럼에도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시 ‘정적’들과 타협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레이건은 고집불통인 시장주의자였지만 당시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던 하원의 의장이며 대표적인 진보정치인이던 팁 오닐과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고 세금을 인상하는 법안에 타협했다. 또 가장 지독한 냉전주의자이면서도 과감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만나 협상함으로써 냉전 종식의 초석을 놓았다.

정치는 철학과 원칙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구체적인 결과를 낳아야 한다. 정치로 인해 국민 생활이 더 윤택해지고 국가가 더욱 부강해져야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꼭 ‘반대파’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상대편과의 타협 없이는 민주정치가 불가능하다. 오바마는 아직 이 원리를 터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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