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입법권 행사 제대로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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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는 요즘 매일 아침 신문의 굵직한 활자를 장식하는 기사들을 보면서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가치체계가 무너진 혼돈의 현장에서 살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이 금융구조조정에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자금의 부담자인 국민은 정확하게 그 자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 자금의 집행을 담당하는 공무원들과 금융기관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의문이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어 답답할 뿐이다.

한편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인 금융구조조정 업무를 맡고 있는 금융감독원의 일부 공무원이 관련된 뇌물의혹사건까지 터져 혼란을 더하고 있다.

군사정권에서 벗어난 지 오래고, 여야간에 평화적 정권교체까지도 이뤄내 이제는 우리 사회가 민주화의 기틀을 제대로 갖췄다고 말할 때가 됐는데도 요즘 우리가 접하는 사회적 문제들에 고개를 돌려보면 우리 사회의 청렴도와 투명도가 과거에 비해 별반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다만 우리에게 다소나마 위안을 주는 것은 언론에 투영되고 있는 따가운 국민의 여론이다. 국민은 정부가 우리 사회의 제반 병리현상에 대해 제대로 수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 각계에서 어떻게 우리 사회의 부조리 구조를 해결할 것인가에 많은 제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임직원들이 모여 자정결의를 하는 식의 대응으로 개선이 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행정부처의 내부통제기능 강화로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양상이다.

우리사회의 장기적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문제의 해결은 보다 원칙에 입각해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권력간의 견제와 균형장치가 살아 움직이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범국민적 노력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간의 견제와 균형의 좋은 예가 국정감사다. 매년 이 무렵 국정감사 철이 되면 국민은 그간 전혀 접할 수 없었던 정보를 얻게 되고, 국회의원들이 그나마 국회에서 목청을 높이며 국민이 궁금해 하는 사항에 대해 행정부를 추궁하는 현장을 보게 된다.

그러나 현대국가가 행정국가화하고 있는 경향을 감안하더라도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입법권의 행사가 형식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국회가 입법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하나 정부제출법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보면 행정부처의 담당과가 실질적으로 입법과정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정부가 입법을 주도하는 경우의 문제점은 규제자의 편의에 치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많은 행정법규들은 국민에게 투명한 행위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담당 공무원에게 자의적 해석과 재량의 여지를 많이 주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적 입법으로 인해 많은 국민을 심지어 범법자로 만들고, 일반국민의 법준수 의식을 흐리게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 경우 역시 위반자 중 일부만 선별해 처벌하는 재량권을 관료가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 법은 부정부패를 낳는 온상으로 작용하게 된다.

한마디로 입법권이 적절히 행사되지 않으면 권력분립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다.

1년에 한번씩 의례적으로 이뤄지는 사후적 국정감사에 의해 적절한 견제가 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그 요점은 경영진의 책임경영을 추구하기 위해 소수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고 감시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국민과 국민으로부터 수권을 받은 국회가 행정부에 대해 효율적 견제를 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 시스템의 재점검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신희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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