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제2 외환위기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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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위기에 처한 한국이 주시해야 할 또다른 변수는 '제2의 동남아발 외환위기' 가 찾아들까 하는 점이다.

현재 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 대다수 국가의 금융시장은 극도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말부터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주가도 곤두박질하고 있다.

현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좀 다르다는 시각이 많기는 하다.

당시에는 헤지펀드 등 국제 초단기자금의 급격한 이동에 따른 충격으로 금융시장이 연쇄 붕괴됐던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정(政情)불안.금융권 구조조정 지연 등 각국의 개별적 사정에 따른 동요여서 그만큼 전염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고유가와 미국의 경기하강 추세 등으로 불안해하는 국제자본이 아시아에서 대거 빠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한다.

동남아에서 외환불안이 가장 심각한 나라는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사임 압력을 받고 있는 필리핀이다.

필리핀 페소화의 가치는 연일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31일에는 한때 달러당 51.95페소를 기록, 중앙은행이 "전력을 다해 지키겠다" 는 52페소 선에 바짝 다가섰다.

중앙은행은 그동안 수차례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3주 전에는 금리를 4%포인트나 인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효력이 없다.

와히드 대통령 탄핵 움직임 등으로 정국이 불안한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가치도 31일 3개월 만에 최저치인 달러당 9천4백80루피아로 떨어졌다.

루피아화의 가치는 최근 두달 사이에 14% 하락했다. 태국의 바트화도 현재 달러당 43.975바트로 28개월래 최저 수준이다.

아시아 주요국의 증시도 최악의 상황이다. 미 뉴욕증시의 침체에 따른 외국인들의 투자자금 회수와 기업들의 수익성 둔화가 직접적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주요 은행들이 보유한 주식의 평가이익이 사라지는 수준인 1만4천엔대에 근접하고 있다.

매수를 주도하던 외국인들은 17일 연속으로 주식을 순매도했다. 대만의 가권지수도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에 대한 탄핵안 제출 움직임 등과 맞물려 10월 한달간 13.8%가 빠졌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종합지수는 6.5%, 홍콩 항셍지수는 5.4%, 싱가포르 ST지수는 2.0% 하락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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