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부터 몸 낮추고 귀 열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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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정의 총체적 위기 조짐을 걱정하는 소리들이 높다.

잇따른 금융부정사건으로 온통 뒤숭숭한데 의약분업사태는 여전히 출구없이 끌고만 있고, 교사들이 교실을 버리고 시위를 벌이는 등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이래서야 정부가 어디에 있는지, 집권세력은 무엇을 하는 집단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고 국민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 정부가 가장 초점을 둬왔던 경제정책은 거의 지지부진이다. 집권 초부터 4대 개혁을 부르짖었는데 아직도 구조조정 타령이다.

금융구조조정이니 대우차매각 협상 해결이니 하면서 정부가 이달 말까지로 설정했던 시한은 모두 넘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쳤던 정부 관리들은 변명에 급급하다.

의약분업의 지연은 단순히 개혁정책의 지연이 아니다. 국민건강권을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정부의 역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추진한 각종 사회개혁이 가져온 것은 생산성을 넘는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수많은 시위…, 그리고 이로 인한 정책혼선밖에 무엇이 더 있는가.

정부가 자랑하는 대북정책은 결과적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는 데는 기여했는지 모르나 그로 인해 한반도의 평화가 얼마만큼 확실하게 보장된 것인지, 아직 불분명하다.

남북문제가 어느 개인의 치적(治績)으로만 끝날 일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한반도문제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그 과정의 투명성과 제도화가 얼마가 이뤄졌는지, 우리 나름의 발언권을 확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금융부정사건들은 이 정부의 기본적 개혁성향을 의심케 하고 있다. 감시.감독을 맡은 기관이 뇌물을 받고 부정을 덮어주고, 정치권이 뒤를 봐주고, 사직당국이 이를 덮는다는 의혹을 사고 있으니 국가의 신뢰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현 사태가 잘못 처리됐다간 다시한번 위기를 부를 수도 있는 심각한 위기 전조(前兆)상황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사태에 직면해 우선 金대통령이 정확한 진실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최근의 여러 상황을 보면 청와대가 위기에 대한 진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케 된다.

金대통령 1인 집중체제가 정부와 관료를 경직시키고 당을 가신(家臣)들이 지배하는 눈치집단으로 격하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정부관료들은 제2의 금융위기는 없다느니,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느니 하며 상황을 호도하고 공무원들은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복지부동(伏地不動)하고 있다. 국정이 능멸당하고 국법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국가의 정책이 먹힐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金대통령이 몸을 낮추고 귀를 열어 밑바닥 민심의 참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정부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정치가 국민과 직접 접속할 수 있도록 체제를 서둘러 대폭 수선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어설픈 합작체제나 의사소통이 안되는 당정협의로는 위기돌파 대책이 나올 수 없다. 위기에 대응하는 긴장된 자세로 정부의 전면적인 대개편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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