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화제작 '가을동화' 윤석호 P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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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파아란 하늘에 눈이 시리다.

가로수 밑을 거닐면 반쯤 노랗게 탈색한 잎새 사이로 햇살 한줄기 정겹고, 아련히 떠오르는 옛추억에 나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 짓게 되는 계절. 가을은 성큼 다가와 어느새 우리곁을 떠나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동화같은 사랑얘기가 요즘 세간의 화제다.

어린 두 남매의 운명적인 사랑과 이별을 그린 KBS 미니시리즈 '가을동화' . 내용은 뻔하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수려한 영상미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는 윤석호(43)PD를 만나봤다.

건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5년 KBS 공채 11기로 입사한 그는 '느낌' '칼라' '순수' 등 영상미를 고집하는 제작 스타일로 '피터 팬' 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한컷 한컷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것외에 달리 비결이 있을까요. 그리움.아픔 등 우리들 가슴 한켠에서 잊혀져 버린 정서를 회화적 이미지를 통해 되살리고 싶었어요. "

그는 "빛의 힘, 자연의 위력을 경외하는 마음자세로 렌즈에 필터를 끼우지 않고 인공조명도 최대한 자제한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려 한 게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고 말했다.

대신 휘닉스파크.양양의 폐교.속초 아바위마을 등 야외로케이션 장소 찾기에 주력하는 한편 역광.포커스 등을 적극 활용해 색과 구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애절함을 표현하면서도 화면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는 그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다는 심정으로 화면이동을 최대한 자제해 시청자들의 눈을 고정시키고 싶었다" 고 털어놨다.

영상미에 비해 내용이 진부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비록 인물의 캐릭터는 별반 새롭지 않지만 슬픔.아련함 등 인간에 내재된 근본 정서는 영원하다" 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골의 산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멀쑥한 전봇대, 대형 건물앞 부조화의 극치인 조각물 등을 거론하며 "이젠 사물의 내용뿐 아니라 사물간의 조화로운 관계에도 신경써야 하며 이는 곧 화면속 영상미의 비중이 훨씬 높아져야 함을 뜻한다" 고 덧붙였다.

TV 드라마 제작의 한계도 그에겐 안타까운 점. 사전제작제가 정착하지 못한 현실에서 다음주 방영분 대본이 일주일 전에야 나오고 방송 20분 전에야 최종 방송분 테이프가 완성되는 환경에선 '열과 성이 담긴 작품' 을 만들어낸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

"황순원의 '소나기' 처럼 살풋한 설레임을 지닌 작품을 찍는 게 꿈" 이라는 그는 "현대사회에서 시나브로 잃어버린 순수함을 되찾는 작업에 매진하고 싶다" 고 앞으로의 작품세계를 밝혔다.

글.사진〓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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