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오페라 '시집가는 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20세기에도 오페라 작곡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소 실천해 보여준 이탈리아 태생의 미국 작곡가 카를로 메노티(89)의 오페라는 1~2시간 정도로 비교적 짧은 편이다.

심지어 30분짜리 단막 오페라도 있다.

이해하기 쉬운 온음계적 선율의 음악, 고밀도로 압축된 드라마, 유머와 풍자 저변에 흐르는 멜랑콜릭한 정서 등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김자경오페라단이 10만달러의 작품료를 주고 위촉해 88 서울올림픽 문화축전 때 서울시립오페라단이 초연한 '시집가는 날' (대본.작곡 메노티)은 해학과 재치가 넘치는 한편의 동화다.

오영진 원작의 희곡 '맹진사댁 경사' 에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최소한의 등장인물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오페라다.

관찰사의 아들 김미언이 승복을 입고 맹진사댁을 직접 찾아가 자신이 신체 장애자라는 소문을 퍼뜨리는 등 원작과 약간 다른 설정도 보이지만 그 덕분에 드라마는 빠른 템포로 진행된다.

공연시간만 약 2시간 소요된다.

국립오페라단이 초연 12년만에 이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올린 것은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때문이다.

공연이 1주일 미뤄지긴 했지만, ASEM 기간 동안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결혼풍습과 문화를 소재로 이탈리아어 가사에 작곡한 오페라를 보여주기 위해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이다.

예술의전당이 ASEM 기획으로 독일어 가사의 '심청' 을 다시 올린 것과 비슷한 배경이다.

초연 무대를 접해 보지는 못했지만 당시 여론은 이 작품을 실패작으로 규정한 것 같다. 또 작곡자에게 음악의 수정.보완을 부탁했던 한국측의 노력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 공연은 그동안 제대로 정식 출판도 되지 않은 상태로 묻혀 있던 이 작품을 무대화해 수정.보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번 심어주었다는 점이다.

미언과 이쁜이가 우물가에서 처음 만나 첫눈에 반하는 대목에서 흐르는 음악은 푸치니의 '라보엠' 에서 로돌포와 미미가 만나는 장면 못지 않게 감동적이다.

군데군데 동양적인 5음음계를 사용한 것이나 무대는 회전무대를 십분 활용하지 못해 깊이가 없고 평면적이었다.

등장인물들은 인물들은 넓은 무대의 좌우로 펼쳐진 동선(動線)에서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드라마와 음악를 쫓아가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평범한 무대와 연기에 앞서 메노티 특유의 서정성과 탄탄한 오페라적 감각을 음악으로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지휘 김정수, 코리안심포니. 테너 임산.류재광(김지언 역), 테너 김태현.김상곤(맹진사 역), 소프라노 박미혜.유미숙(이쁜이 역), 소프라노 김금희.신주련(연아 역)등이 출연한다.

28일 오후 3시, 7시, 29일 오후 4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586-5282.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