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헌법 벗어난 국회의 검찰탄핵 명백한 정치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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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정치는 오랜 혼란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 투쟁기를 거쳐 정권교체까지 이뤘지만 아직도 미래에 대한 새로운 변화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투쟁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정치는 요원한 과제가 아니냐는 의심이 가게 하는 대목이다.

'역할 모델' 이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 우리 정치에는 제대로 된 역할 모델이 없는 것 같다.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무엇이 민주의식이고, 무엇이 민주생활이며, 어떤 사람이 민주시민이고, 어떤 것이 민주주의인가를 보여주는 모델은 아무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것은 부정과 반감의 정치로 일관해 온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생성된 정치적 부산물이다.

이제는 정치권이 이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바로 잡는 데 앞장서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민주정치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서는 안되는 일을 구별해 스스로 자제하고 품위를 지킬 때 비로소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아무 것이나 하면 된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국회는 또 다시 검찰총장과 대검차장에 대해 탄핵소추를 발의함으로써 국회 스스로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물론 탄핵소추를 발의할 수 있는 기관이 국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탄핵소추 대상자는 헌법과 법률이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

헌법 제65조 1항과 헌법재판소법 제48조에는 탄핵소추 대상자를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 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으로 열거한 뒤 그 이외의 공무원에 대해서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탄핵소추 대상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바 없으므로 현재로는 헌법 제65조 1항과 헌법재판소법 제48조에 열거된 공무원 이외에 대해서는 탄핵소추를 할 수 없게 돼 있는 것이다.

다만 학설상으로 검찰총장과 검사, 각 군 참모총장 등도 포함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탄핵소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면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불과한 것이므로 학설만으로 당연히 포함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탄핵소추의 대상자도 아닌 검찰총장과 대검차장에 대해 어떻게 탄핵소추를 발의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국회라 해도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지 않는 일을 자의적으로 할 수는 없다.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이 열거한 공무원 이외의 공무원을 탄핵소추한 것은 명백히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다.

더구나 헌법 제65조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를 집행함에 있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때만 탄핵소추를 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탄핵발의안을 보면 검찰총장 등이 어떤 점에서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도 않고 추상적으로 "선거사범 수사 등을 편파적으로 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의무를 외면했다" 고 돼 있다.

이 역시 헌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않은 적법하지 못한 사항이다. 즉 탄핵발의가 아니라 정치공세임이 분명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정치권이 스스로 품위와 격률(格率)을 지켜야 할 것이다.

장석권 <단국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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