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조속 재개를" ASEM 의장 성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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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의 제5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 참석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8일 1차(정치 분야).2차(경제.통상) 전체회의에 참석,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테러 근절에 대한 의지를 알리고 38개 회원국 정상의 지지를 요청했다.

◆노 대통령 "테러 반드시 근절돼야"=노 대통령은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1차 정상회의에서 이라크 문제와 관련, "전쟁의 명분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조속히 이라크의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영향력 있는 국가들이 참여해 안정을 찾도록 하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테러는 절대 용납될 수 없고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며 "테러의 원인 근절을 위해 문명 간의 대화 같은 다각적이고 국제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안보리 이사국 증원 등의 유엔 개혁 문제에 대해 노 대통령은 "안보리의 개혁은 민주성과 지역 대표성이 반영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특히 상임이사국은 합리적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의지.역량에 대해 소속된 집단과 지역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우성 대통령 외교보좌관은 노 대통령의 언급이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특정 국가를 지칭한 게 아니라 상임이사국이 지녀야 할 원론적 자격을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0분간의 연설 말미에 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여러 정상의 지지.관심에 감사드린다"며 "이런 관심의 결과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는 과거 대결 시대보다는 훨씬 예측.관리가 가능한 상황으로 개선되고 있다"며 "1990년대 이후 불신 해소 노력을 통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고도 했다. 노 대통령은 2차 전체회의에선 연설을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앞서 판 반 카이 베트남 총리가 주최한 7일의 비공식 만찬에서 페르손 스웨덴 총리가 "북핵 문제를 좀 설명해 달라"고 하자 그간 우리 정부의 평화적 해결 노력과 6자 회담 진행 상황을 장시간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만찬 직후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고구려사 문제가 양국 정부 간 구두양해 사항의 성의있는 이행을 통해 원만히 해결되도록 해달라"고 촉구했고 원자바오 총리는 "이 문제로 양국 관계가 손상되지 않도록 상호 노력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8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EU가 북핵문제 해결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해 적극 협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 9일에는 폴란드, 유럽연합(EU) 측과 양자 정상회담을 한다.

◆ASEM 의장성명서, "6자회담 조기개최" 촉구=이번 정상회의에는 모두 세 가지 문서가 채택돼 9일 폐회식과 함께 발표된다. 가장 비중이 큰 '의장(판 반 카이 베트남 총리)성명서'는 "평화적 해결과 6자 회담을 통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해 강력한 지지를 표명한다"며 6자회담을 최대한 조속히 재개할 것을 촉구했다.

의장 성명서는 테러, 대량살상무기 확산 등의 범세계적 위협에 공동 대처하기 위한 회원국 간의 조정과 협력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정상들은 또 "대량살상 무기와 그 운반 수단이 테러리스트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며 "모든 형태와 명분의 테러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의장 성명서는 그러나 "테러와의 싸움을 위해서는 유엔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며 "유엔 헌장에 명시된 원칙과 불간섭, 영토와 국가주권, 인권에 대한 존중 등 국제법의 기본 규범에 합치돼야 한다"는 규정도 삽입했다. 이를 두고 미국이 회원국이 아닌 ASEM 회의에서 반미 기류가 강한 유럽과 중국이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ASEM 회의에서는 두 대륙 경협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화하려는 취지의 '긴밀한 ASEM 경제동반자 관계에 관한 하노이 선언'이 채택됐다. 또 양 대륙의 문화 교류를 촉진시켜 잠재적 갈등을 예방하자는 내용의 '문화.문명 간 대화에 관한 ASEM 선언'도 채택됐다. 이번 회의는 9일 3차 전체회의(사회.문화)를 끝으로 폐막되며 노 대통령은 10일부터 사흘간 베트남 국빈 방문 일정에 돌입한다. 노 대통령은 오는 12월 17, 18일 일본 규슈 가고시마 현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

하노이=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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