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순회 진료 나왔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매주 목요일 오후 1시30분. 영등포구 보건소 앞마당이 분주해진다. 보건소에 근무하는 의사 1명, 한의사 1명, 약사 1명, 간호사 2명이 모여 있다. 지역 경로당 어르신들의 기초 건강을 돌봐드리는 순회 진료 검진 서비스팀이다. 일명 ‘움직이는 작은 종합병원’이다. 어르신들에게 건강뿐 아니라 웃음도 선사하는 ‘행복 순회 진료 패밀리’다.


“요즘 날씨가 너무 춥죠, 할머니?”

21일, 진료팀이 상록수아파트 경로당(영등포구 양평동)에 들어서면서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어르신들의 건강 체크 만큼이나 중요하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되면 진료를 서두른다. 어르신들 대부분이 만성질환자다보니 정해진 시간 안에 진료를 마치려면 서둘러야 한다. 우선 한방진료 대상자 12명을 가린다.

한방치료는 1인당 30분으로, 양방보다 진료 시간이 길어 인원이 제한된다. 반면 원하는 어르신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대상자 선정은 경로당 회장이 한다. 연세가 많거나 몸이 좀 더 불편한 어르신 위주다. 신사도 정신을 발휘해 할머니들에게 양보하는 할아버지도 종종 있다.

한방치료를 원하는 어르신들의 주요 증상은 허리·무릎 등에 나타나는 퇴행성관절염·골다공증 등이다. 간혹 넘어져 골절상을 입은 경우도 있다. “눈이 많이 오고 날이 추웠던 연초에 넘어져서 팔목을 다친 할머니가 있으셨죠. 침으로 치료할 상황이 아니더군요. 얼른 병원에 모셔다 드렸어요.” 한의사 이경희(39)씨의 말이다.

이씨가 합류한 것은 1년 전이다. 양방 의사들로 구성됐던 진료팀에 한방팀이 합류하면서다. 이씨는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게 순회 진료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 분들의 지혜와 인생을 배워요. 속상한 일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나도 이렇게 곱게 나이 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 그에게 진료 인원이 한정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워 한두 마디 꼭 덧붙이게 된다. “할머니, 밥잘 드셔야 해요. 입맛이 없다고 굶으시면 금방 기력이 쇠하거든요. 몸져누우면 다시 일어나기 힘드시니, 꼭 끼니 챙기세요.”

한방진료 대상자를 제외한 어르신들은 만성질환 검사를 받는다.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측정하고 결과에 따라 의사와 상담한다. 상담 후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고혈압·당뇨약을 제외한 감기·위장질환·통증 따위의 상비약을 처방받는다. 약사는 약 먹는 방법과 혹시라도 있을 약물 오·남용, 그리고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약으로 인한 환경오염 등 약에 관한 교육을 설명한다.

“'매일 먹어야 하는 혈압 약을 하루 정도 걸러도 되겠지'라며 가볍게 여기는 분이 꼭 있어요. 또 잔치에서 남은 음식 챙겨가는 것처럼 약에 욕심내는 분도 있죠. 아플 때만 드시라고, 다른 약이랑 섞어 드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려야 해요.” 지역보건팀 간호사 신호순(33)씨의 말이다.

남의 약에 욕심내고 몸에 좋다는 비타민제를 꼭꼭 챙기는 건강 염려증 할아버지, ‘이렇게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라며 건강에 소홀한 할머니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잔소리도 많아진다. “싱겁게 드시고 되도록 자주 걸으라고 말씀드려요.” 이에 돌아오는 대답은 대개 “나 정도면 보통이야”다.

보건소 만성질환 사업팀의 간호사 박정민(38)씨는 “한국인의 ‘보통’이면 대부분 짠편”이라며 “국에 밥 말아 먹지 말고 국물보다 건더기 위주로 드시라”고 조언한다. 또 경로당과 집을 걸어서 오가는 정도의 운동도 권한다. 물론 너무 추운 날은 외출을 자제하는게 낫다. “날이 추우면 몸이 긴장돼 혈압이 일시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라는 게 양방진료를 맡은 김형기(36)씨의 귀띔이다.

잔소리 할 땐 유머를 섞는 것도 비법이다. “걱정하는 마음에 무턱대고 하면 도리어 혼나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유쾌하게 웃으실 수 있도록 농담도 건네야 효과가 좋죠.”

진료팀이 올해 방문할 곳은 신청서를 낸 지역 40여 개의 구·사립 경로당이다. “몸이 안좋아 더 외로움 타는 어르신들이 많다”는 이들의 바람은 “좀 더 많은 어르신들이 혜택을 받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영등포구 보건소는 순회 진료 후 만성질환자는 따로 보건소에 등록해 정기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 한다. 치매 조기발견과 관리를 위해 치매 선별 검진도 실시하고 있다.

[사진설명]21일 순회 진료팀의 김학경(36·양방진료 담당의左)씨가 상록수아파트 경로당에서 임영자(67) 할머니를 진료하고 있다.

<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

< 사진=최명헌 기자 choi315@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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