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자유화 보완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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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내년부터 시행되는 2단계 외환자유화를 앞두고 정부가 마련한 보완대책은 돈의 생리에 주목한 것이다. 떳떳지 못한 돈일수록 밝은 곳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고소득은 쥐꼬리만한 개인사업자가 거액을 해외로 가지고 나가거나 송금한다면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내년부터 뭐가, 어떻게 달라지나=해외여행경비 1만달러, 증여성 송금 건당 5천달러, 해외이주비 4인 가족 기준 1백만달러 등의 제한이 내년부터 모두 풀린다. 은행에서의 외화매입 한도도 폐지되며, 해외예금이나 해외신탁.해외증권 취득 등의 제한도 사라진다.

사전보고 등 합법적 절차를 거치기만 하면 마음껏 해외여행 경비를 쓸 수 있고, 송금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의 투자도 자유로워진다.

◇ 정부의 복안=당국의 감시장치가 미흡할 경우 불법적인 자금도피가 늘어나고 일반인들의 외화 씀씀이가 커져 외화가 급격히 빠져나갈 수 있다.

정부는 그래서 ▶건당 5만달러 이상의 기업 대외채권 6개월내 회수 의무▶헤지펀드 등 비거주자의 원화차입 제한▶재무 불건전 기업의 단기차입 제한 등 당초 없애기로 했던 일부 규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또 고액자금의 대외지급시 사전보고제를 도입하고, 국세청.관세청 통보제를 강화하는 한편 금융정보분석기구(FIU)를 설치, 범죄와 관련한 검은 돈의 흐름을 철저히 막겠다는 것이 정부 구상이다.

정부는 고액자금의 한도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되 시장불안을 초래하지 않도록 지나치게 높게 잡지는 않을 계획이다.

◇ 뭉칫돈 해외유출 우려는=예금부분보장.금융소득종합과세 시행과 맞물려 급격한 자본유출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2단계 외환자유화 시행 후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대내외 경제 불안요인이 불거질 경우 자금의 급격한 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경부는 그러나 국내외 금리차, 환리스크, 외환매매수수료 부담, 자산의 해외운용상 애로, 국세청 통보제 유지, FIU제도 신설 등을 감안할 때 투기적 자본유출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년 만기 외화 정기예금을 기준으로 할 때 국내은행의 금리가 연 7.8%, 외은지점은 6.68%인 데 비해 미국은 3.04%, 영국은 4.46%에 불과하다. 돈을 다시 국내로 들여와 원화로 바꿀 때는 1%정도의 외환매매수수료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결국 3% 안팎의 금리손해를 보면서 돈을 해외에 예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현행 1인당 해외여행경비 한도가 1만달러인 데도 실제 실적은 올해 1~4월 1인당 9백63달러에 불과했고 증여성 송금도 그동안 분할.분산 송금 등이 가능했던 점으로 미뤄 앞으로 추가 유출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재경부는 예상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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