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연기에 쓸려간 돈 한 해 5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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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갑 이상 담배를 피우던 40대 직장인 A씨. 지난해 11월 근무 중 갑자기 쓰러진 그는 뇌졸중 진단을 받았다. 의식은 찾았지만 한쪽 팔과 다리에 마비 증상을 보여 회사를 휴직하고 두 달째 병원에서 재활 치료 중이다. A씨는 자꾸만 불어나는 병원비와 간병인 비용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지난해 받았던 건강검진에서 “담배를 끊지 않으면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던 의사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던 것이 자꾸 후회될 뿐이다.

담배를 피우는 40대 남성이 비흡연자보다 의료비가 1.6배 더 들고 수명도 6년가량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영호 연구위원이 25일 발표한 ‘미래 건강사회에 대비한 효과적인 담배가격 정책 방향’ 보고서의 내용이다.

정 위원이 2007년도 건강보험과 사망률 통계를 종합 분석한 결과 40세 흡연 남성이 뇌혈관 질환에 걸려 사망 시까지 써야 하는 의료비는 2982만원이었다. 반면 비흡연자는 1857만원으로 훨씬 적었다. 이 금액은 연령별 뇌혈관계 질환자의 평균 진료비에 흡연자의 발병률과 비흡연자의 발병률을 적용해 추산했다. 뇌졸중은 흡연자의 발병률이 비흡연자보다 3.7배가량 높다.

또 담배를 피우지 않는 40세 남자는 앞으로 42.7년을 더 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40세 흡연 남자의 기대여명은 36.4년이었다. 비흡연자보다 6년이나 짧았다.

담배를 피웠다가 끊은 경우 의료비는 2154만원, 기대여명은 41.2년이었다. 40세 흡연자가 지금 담배를 끊는다면 의료비 830만원을 절약할 수 있고 5년가량을 더 살 수 있다는 얘기다. 흡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도 2007년 기준으로 5조639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암·뇌졸중·폐렴 등 흡연 관련 질병으로 조기 사망하면서 발생하는 소득손실액이 3조5214억원이나 됐다. 진료비(1조4252억원)와 간병비(1896억원), 교통비(203억원) 손실도 컸다. 질병 관련 비용만 5조4603억원인 셈이다. 또 간접흡연에 따른 피해 비용도 1715억원이었다.

정 위원은 “담배 소비를 줄이면 국민 건강과 가정경제는 물론 사회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08년 기준으로 국내 가구당 연평균 담배 소비액은 2만177원이다. 그는 “프랑스 등 유럽 사례를 볼 때 담배가격이 10% 오르면 젊은 층과 저소득층의 담배 소비가 10%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유럽 19개국의 평균 소득 수준과 비교해 산정한 한국의 적정 담배가격이 6119원 정도인 만큼 담뱃값 인상을 통한 소비 억제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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