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들이 25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사회이사 모범규준’을 의결했다. 왼쪽부터 송기진 광주은행장, 이종휘 우리은행장, 신동규 은행연합회장, 윤용로 기업은행장, 김정태 하나은행장, 민유성 산업은행장, 하영구 씨티은행장, 강정원 국민은행장, 김태영 농협 신용부문 대표. 은행들은 주총 소집을 위한 이사회가 열리는 3월 초까지 은행별 시행안을 확정해야 한다. [뉴시스]
미국 금융회사들은 이처럼 기라성 같은 독립적 사외이사들로 채워져 있음에도 2007년 금융위기를 자초했다. 사외이사들은 경영진의 전횡과 독주를 제대로 감시하지도, 견제하지도 못했다. 한마디로 ‘눈뜬 장님’이었다. 독립성과 전문성 이전에 도대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핵심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던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지금 미국 등 선진 각국은 은행 등의 이사회 제도를 어떻게 뜯어고쳐야 할지 고민에 싸여 있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6월 ‘금융회사의 이사회 제도 개편 권고안’을 제시했다. 한국도 이 논의에 동참해 금융연구원과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연구팀이 가동됐다. 그런데 때마침 KB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이 논의는 ‘KB사태 수습책’의 성격을 띠게 됐고 관심이 증폭됐다. 그 결과 탄생한 게 25일 발표된 ‘은행 사외이사 모범규준’이다.
이번 제도 개선안을 보면 사외이사의 독립성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사회 의장을 매년 새로 뽑도록 못 박고 ▶한 사람이 은행 사외이사는 한 곳만 맡도록 하는 한편 ▶사외이사를 매년 5분의 1씩 교체토록 한 것 등은 OECD 권고안에도 없는 엄격한 조항들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제도 운용이다. 사외이사제의 원조인 미국조차 실패를 자인하지 않았는가. 지금 세계 각국이 사외이사 제도를 손보고 있는 것은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제도 개선을 바탕으로 한국형 사외이사제의 취약점을 속속들이 드러내 이를 치유해 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보수와 자리를 겨냥하는 ‘잇속형’ 사외이사들을 밀어내는 일이 시급하다. 이번 개선안에도 금융·경영·회계 등 분야의 전문가 요건을 넣었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다.
김광기 경제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