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북 압박 수위 계속 높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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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한의 핵 실험 준비 징후와 관련해 대북 경고 수위를 한층 높였다. 백악관은 북한의 핵 실험을 '도발'이라 규정하고 '억지력'이란 용어로 군사적 대응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미 정부 내 강경파들은 영변과 길주 등 북한의 핵 실험 예상 지역에 대한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신호를 언론에 흘리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외교적 해결'이다.

◆ "미군 '대북 선제공격' 입안"=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7일"북한이 그런 단계(핵 실험)를 밟는다면 이는 또 하나의 도발적인 행위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며 "우리는 (북한에)강한 억지력을 갖고 있다. 누구도 우리의 능력을 오판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무엇을 하든 미국은 모든 종류의 실질적인 억지력을 갖추고 있다"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발언(2일)에 이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억지력'의 의미에 대해 미 언론들은 "외교적 포장을 벗겨내면 결국 '미국은 북한을 파괴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날 "미국 내 강경파들은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북한에 대한 제한적 폭격을 검토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NBC 방송도 "미군이 북한의 핵 실험 예상 지역을 선제공격하는 작전계획을 이미 수립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군 당국자는 "미군은 평시에 모든 군사계획을 만들고 있다"며 "미국이 군사적인 선택으로 기울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국방부 관계자들도 7일 "북한의 핵 실험이나 핵연료 재처리를 중단시키기 위한 어떤 군사행동도 계획돼 있지 않다"며 "외교적 해결이 부시 행정부의 최우선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무부와 백악관은 군사행동을 제외한 다른 선택들은 상당 부분 깊숙이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 해상 봉쇄=뉴욕 타임스는 8일 "미국은 '검역작전'이라 불리는 해상 봉쇄 계획을 안보리에 통과시키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계획은 북한을 드나드는 선박들을 수색해 불법 무기를 색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이 계획에 반대할 가능성이 큰 데다 북한의 무역은 대부분 중국과의 국경지대에서 이뤄지는 만큼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신문은 분석했다.

니컬러스 번스 미 국무부 정무차관도 6일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5개국은 다른 '외교적 선택'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선택'에는 ▶북핵 안보리 회부▶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통한 북한의 마약 밀수.위조지폐 적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 미국 대북 압박 명분 축적 중=매클렐런 대변인은 "미국뿐만 아니라 동맹국들도 북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은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게끔 동맹국들과 함께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톰 케이시 국무부 공보국장도 7일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현재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백악관이 북한의 핵 실험 징후 정보를 뉴욕 타임스 등 주요 언론에 흘리고, 관계국들에 통보한 데 이어 군사행동까지 암시하는 발언을 한 것은 대북 압박을 위해 명분을 쌓는 수순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이 일방적으로 군사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며 6자회담 참가국들과 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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