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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 지난해 7~8월 이미 끝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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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호 24면

“경제예측 모델을 믿었어야 했다.”
에드워드 리머(66) UCLA 앤더슨경제연구소(Anderson Forecast) 소장의 아쉬움이다. 그는 2008년 상반기 ‘미국 경기침체는 없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한 술 더 떠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연구소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의 명성을 모두 건 도박이었다. 그는 2001년 경기침체와 2006년 집값 하락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가 이끈 앤더슨연구소는 미국 5대 경제예측기관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는 ‘닥터 둠’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보다 큰 유명세를 얻었다. 하지만 2008년 예측이 빗나가면서 체면을 구겼다. 악취미일까. 그의 ‘도박’ 이후 1년 반이 흘러 그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중앙SUNDAY는 그에게 요즘 심경과 미 경제전망을 들어봤다.

에드워드 리머 앤더슨경제연구소장의 美 경제 진단

-물러난다고 하지 않았는가.
“연구소에 사표를 제출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 듯하지만 왜 ‘침체는 없다’고 예측했는가.
“(웃음)앤더슨연구소 예측 모델은 침체를 시사했다. 2008년 초에는 경기 하강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그 정도라면 미국 정부가 충분히 대응해 침체를 예방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감에 의존했다는 말인가.
“내 직관과 통찰력을 믿었다. 변명 같지만 2008년 4~5월에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짐작도 못한 리먼이 무너지면서 미 경제가 곤두박질했다.”

-금융위기 패턴을 감안하면 그 정도 일이 벌어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았을 듯하다. 실제 루비니 교수는 대형 금융회사 파산을 예측했다.
“(또 웃음)나를 고문하는 것 같다. 그는 뛰어난 이코노미스트다.”

-미안하다. 실패한 경제예측의 교훈이 무엇인지 궁금해서다.
“이코노미스트는 분석과 예측의 실패에서 많이 배운다. 중요한 순간에 나도 예측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8년 경험에서 경제분석 모델을 믿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무슨 말인가.
“우리 분석모델은 침체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내 직감과 통찰력에 따라 침체 가능성을 무시했다.”
계량경제학 고수다운 말이다. 그는 실물 데이터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해 경제를 진단한다. 계량경제학 전문가들은 “직관이나 통찰력 대신 숫자를 믿는다”고 말하곤 한다. 심지어 ‘데이터가 말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론보다 데이터 분석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리머 교수의 말대로라면 그는 2008년 일탈을 한 셈이다. 냉정하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한 숫자 대신 직관을 믿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다시 데이터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가.
“가장 정확하고 많은 데이터를 분석모델에 입력해 나온 결과를 최대한 존중하려고 한다.”

-분석 결과 미 경제는 어디에 서 있는가.
“최악에서 탈출하고 있는 중이다. 경기변동 그래프를 보면 저점(Trough)에서 장기 평균치 수준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 경기변동위원회 멤버라면 어떤 판단을 내릴 것 같은가.
“나는 지난해 7~8월에 침체가 끝났다고 본다. 미 경제는 그때 저점을 통과했다. 전미경제연구소는 침체가 2007년 12월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이번 침체는 20~21개월 동안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침체의 정도를 평가한다면.
“대공황으로 미 경제는 43개월 동안 수축했다. 29년 8월부터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취임한 33년 3월까지다. 이번 침체는 대공황 이후 가장 길다. 또 1980년대 초 더블딥(이중침체)보다 길었다. 미국 경제가 1850년 이후 침체에 빠진 적은 30번 정도 되는데, 침체가 20개월 이상 이어진 적은 단 일곱 차례에 불과했다. 이번이 여덟 번째다.”

-더블딥을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더블딥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 투자와 소비가 동시에 줄어드는 일이다.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

-미국 고용시장 회복이 더디고 신용카드 사용 등 소비자 신용이 계속 줄고 있다.
“일자리 창출이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인들의 소비가 느리게 되살아나는 이유다. 하지만 기업의 투자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중국 등의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가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를 많이 수입하고 있다.”

-회복 속도는 어떨까.
“아주 빠르다. 미 경제가 회복하는 데 20개월 정도 걸렸다. 이번에는 10~15개월 정도면 충분할 듯하다. 올가을이면 확장 국면에 들어설 수도 있을 듯하다.”
지난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금융개혁안을 발표했다. 시중은행이 자기 이름으로 위험자산을 사들이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은행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적극적으로 자금을 공급하기 힘들어질 전망이다.

-오바마 개혁안이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루스벨트가 만든 금융규제가 힘을 발휘했던 60년대 미국 경제는 건국 이후 최대 호황이었다. 신용(자금) 공급이 줄어들면 경제활동이 위축되기는 하지만 오바마 개혁이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개인적으론 오바마 제안을 지지한다. 진작에 과감하게 제안했어야 했다.”

-금융개혁이 미 경제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걱정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미국 경제에서 금융산업은 중요하다. 국내총생산(GDP)의 8~10% 수준이다. 미국만 금융산업을 엄격하게 규제한다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주요 20개국(G20) 합의 등에 비춰) 오바마 개혁안이 법으로 만들어지면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규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미국의 경쟁력은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WHO?
리머 교수는 1944년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나 프린스턴대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이어 미시간대에서 통계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6년 동안 수학과 통계를 공부하는 그는 미시간대 박사과정에서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1900년 주가예측 여부를 수학적으로 따져본 프랑스 루이 바슐리에 이후 수많은 수학자가 경제학자로 전향했는데, 리머 교수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인 셈이다. 그는 70년 이후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다 75년 UCLA에 둥지를 틀었다. 2000년 이후에는 앤더슨경제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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