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의 아이티 구호활동기] ① 산토도밍고에서 아이티 국경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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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대지진 참사현장에 한국인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아이티 지원팀도 그 중 하나다. 당 청년위원장인 강용석 의원을 포함한 6명의 지원팀은 22일(현지시각)부터 포르토프랭스에서 구호활동을 시작한다. 17일 한국에서 출발한 지 무려 5일 만이다. 강 의원이 아이티 현지에서 생생한 구호활동기를 조인스닷컴에 보내왔다. 강 의원의 글 전문.

<강용석 의원의 글 전문>

한나라당 아이티 지원팀

'누군가의 불행이 누군가의 행복'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통 제로섬 게임이라고 하지요. 아이티와 도미니카의 최근 상황이 딱 그래 보이는데요. 도미니카는 아이티에 몰려드는 구호의 손길 덕분에 특수를 맞고 있습니다. 어제 물품 구입을 하면서 텐트를 구하지 못해 10여군데를 돌아다녔는데 오늘 출발을 앞두고는 도미니카 운전사가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새벽 선 잠을 전화벨 소리에 깨고 보니 보좌관이 오전 6시 30분까지 준비하고 나와 7시에 시작하는 숙소 아침을 먹고 출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짐을 정리해서 나와 보니 밴 두 대(조금 큰 밴과 작은 밴)가 와서 저희 짐을 한참 싣고 있었습니다.

아침을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최정석 관장과 함께 먹고 있는데 보좌관이 문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큰 밴이 짐을 다 싣고 나더니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원래 2박 3일에 750불을 받기로 했던 것을 하루에 750불을 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도미니카의 노동자 월급이 한달에 300불에서 350불이라는데 큰 밴이 이번 기회에 팔자를 고치려고 하나 하며 어이가 없어 하니까 최 관장이 그런 일은 여기서는 늘상 있는 일이라며 자기에게 맡기라는 것입니다.

최 관장은 유창한 스페인어로 큰 밴을 한동안 어르고 달래고 하더니 결국 짐을 모두 내리라는 강공책으로 들어갔습니다. 결론은 처음부터 협조적이었던 작은 밴이 자기 친구를 불러 자신과 같은 조건으로 가는 것으로 났습니다. 지금쯤 큰 밴은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저희가 묵었던 숙소는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단원들이 예약을 해놨던 곳입니다. 저희가 일부러 코이카 단원들과 같은 숙소로 해달라고 했었죠. 밖에서 교통편을 놓고 사단이 난 사이에 저는 숙소 입구에서 소방구조대에 이어 밤 사이에 2차로 도착한 코이카 의료진의 최재홍 단장과 인사를 나누고 코이카 의료진에 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코이카 의료진은 모두 18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코이카 소속 7명과 국제협력재단 9명 이렇게 16명의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코이카의 직원인 최재홍 과장(의료진의 단장을 맡았습니다)과 실무직원 1명으로 구성되었답니다. 의료진중 의사들은 메디컬 센터 소속의 의사들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개업의랍니다. 이번 사태를 맞아 자신의 병의원을 휴업하고 봉사활동을 나오신 거죠. 간호사 분들은 이런 활동을 병원에서 인정해주지 않아 자신의 연가를 끌어쓰며 이곳에 나오셨다네요. 최재홍 단장은 어디나 그렇겠지만 의사들도 봉사활동 하는 사람들이 늘 한다며 봉사와 기부의 분위기가 더 넓게 확산되었으면 한다고 합니다.

아이티 국경

이제 아이티로 출발입니다.코이카 팀과는 현지에서 만나기로 하고 코트라 최정석 관장과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최 관장은 우리들의 점심이 걱정되었는지 김밥을 쿠킹호일에 말아 20줄 가량을 건네주더군요. 결국 그 김밥이 없었으면 우리는 쫄쫄 굶을 뻔 했지요. 밴 두 대(편의상 ‘작은 밴’과 ‘친구 밴’으로 부르겠습니다)에 생수 20박스와 기타 모든 짐을 나눠 싣고 나란히 출발했습니다. 문제는 작은 밴이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새로 온 ‘친구 밴’은 주로 명사로 구성된 몇 마디의 생존영어가 가능해 그래도 간신히 의사소통이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주행중에 급한 의사소통은 작은 밴(저는 작은 밴에 타고 있습니다)에서 친구 밴으로 전화를 해서 친구 밴에게 영어로 내용을 설명하면 다시 친구 밴이 작은 밴에게 전화를 해서 스페인어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뭐 그래봤자 화장실이 급하니 쉬었다 가자는 정도긴 했습니다.

산토도밍고에서 아이티 국경까지는 250km, 국경에서 포르토프랭스까지는 다시 70km입니다. 길은 외길이구요. 320km면 고속도로로 가면 네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짐작하다시피 도로 사정이 극히 좋지 않은 관계로 보통 10시간 걸린다고 보는 거리입니다. 저희도 산토도밍고에서 아침 8시 반에 출발해서 국경에 도착한 것이 오후 3시, 다시 한국구조대가 있는 포르토프랭스의 발전소 부지에 도착한 것이 저녁 6시니까 꼬박 9시간 반이 걸린 셈입니다.

저희야 최 관장이 싸준 김밥을 먹어서 괜찮았지만 작은 밴과 친구 밴은 점심을 해야겠다며 동네 한복판에 차를 세워 놓고 밥 먹으러 가버렸습니다. 차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완전히 마을의 구경거리가 돼버렸습니다. 작은 밴과 친구 밴이 밥먹고 돌아왔습니다. 아이티로 가는 길엔 도미니카의 국립공원 지역을 통과하게 돼있습니다. 작은 밴이 차를 갑자기 세우길래 내려 봤더니 이구아나 출몰지역이네요. 어디선지 슬슬 한 두 마리씩 이구아나가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몇 십마리가 모였습니다. 뭐라도 줘야 일이 해결될 것 같아 먹다 남은 김밥을 던져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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