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터뷰] 김현철 전 삼미그룹 회장, 삼미 시절의 추억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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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는 1982년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삼미 슈퍼스타즈를 창단했다. 김현철(오른쪽) 삼미 회장이 이혁근 단장에게 야구단기를 건네고 있다. [중앙포토]

-회장직을 떠나고 난 지 2년 만에 그룹이 부도가 난 거네요.

“당시 삼미는 1조4000억원 정도 빚이 있었습니다. 그걸 해결하려고 동생은 삼미특수강 절반을 포항제철에 팔았습니다. 7000억원 정도 받았죠. 빚을 갚아서 부채비율이 100% 정도에 불과했어요. 캐나다 법인도 포철에 넘긴 상태였고요. 남들 다 하던 분식도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덩치를 줄였던 게 오히려 실수였어요. 마침 한보철강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나와 이름이 같은 김영삼 대통령 아들이 한보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거였죠. 그 바람에 한보가 부도나고 은행 임원 4~5명이 구속됐습니다. 그러자 은행들이 한꺼번에 대출을 죄고 들어왔습니다. 부도를 내도 충격이 덜한 회사를 찾다 보니 우리가 희생양이 된 거죠.”

-회장 시절 야구단을 창단한 건 의외였습니다.

“본래 스포츠를 좋아했습니다. 우린 소비재가 없었지만 프로야구가 될 것도 같고 야구협회 사무총장이 안쓰럽기도 해서 발표 전날 전격적으로 결정했어요.”

-구단 성적은 좋지 않았죠.

“준비 없이 창단한 데다 인천·강원엔 선수도 부족했습니다. 첫해 18연패에 꼴찌라는 수모를 당했죠. 얼마 전 ‘슈퍼스타 감사용’이란 영화도 나왔더군요. 그랬더니 오기가 나는 거예요. 이건희 삼성 회장을 찾아갔습니다. ‘회장님 선수 좀 주십시오’ 그랬죠. 그래서 데려온 게 정구왕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재일동포 선수 두 명을 데려올 옵션도 있었어요. 워낙 실력 격차가 나니 우리에게만 그런 권리를 준 거죠. 일본에 있는 장훈씨가 보내준 게 장명부 투수와 이영구 타자였습니다. 장 선수는 그해 30승을 올렸죠. 꼴찌였던 슈퍼스타즈가 이듬해 전반기 1위로 치고 올라간 거예요. 한데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딱 맞더군요. 당시 감독이 김진영씨였는데 다혈질이었어요. 동대문야구장에서 MBC 청룡과 맞붙었는데 심판 뒤쪽에서 보호막을 걷어차며 거칠게 판정에 항의를 한 거예요. 하필 그 장면을 전두환 대통령이 보고 “저거 뭐냐”고 한마디 하자 김 감독이 구속돼 버렸죠. 감독이 빠지니 바로 2등으로 밀립디다. 부랴부랴 후임으로 백인천씨를 스카우트해 왔어요. 초반엔 잘했는데 백 감독조차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나 결국 1등을 못해봤어요.”

-앞으로 계획이 있습니까.

“아이티에 선교센터와 함께 병원·기술학교를 짓는 겁니다. 이번에 포르토프랭스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힘을 보태고 싶다는 연락이 많이 오고 있습니다. 당장 먹을 물과 식량도 급하지만 아이티는 길게 봐야 합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구호 말고 그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는 게 절실합니다.”

포르토프랭스(아이티)=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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