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엇을 국민투표에 부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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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9일 여야 영수회담 도중 통일론에 대해 언급하다가 느닷없이 "국민투표에 부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고 말해 그 의미를 놓고 구구한 억측이 일고 있다.

통일론을 개헌론이나 정권 재창출에 연계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나오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말해 통일론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발상은 부적절하며 시기적으로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金대통령은,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가 북의 연방제안은 대남 적화전략의 핵심이라고 지적하자 연방제란 외교군사권을 중앙정부에 일임하는 것인데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그것이 아니므로 북이 연방제를 포기하고 남측의 연합제안에 접근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북은 연방제를 포기한 바가 없다. 북한은 바로 며칠 전인 6일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 제시 20주년 기념 평양시 당보고회에서 "낮은 행태의 연방제는 북과 남에 존재하는 두개의 정부가 각각 정치.군사 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갖게 하고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내오는 방법" 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 방식은 김일성(金日成)주석이 1991년 신년사에서 제시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마도 정부측은 이를 연방제 포기로 보는 모양이다. 그러나 김일성 신년사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 두개 정부의 원칙에 기초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의 창립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쉽게 하기 위해 잠정적으로는 연방공화국의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 높여나가는 방향" 을 제시하고 있다.

시 당보고회가 밝힌 민족통일기구는 장차 중앙정부로 발전해가는 것이므로 연방제의 기초단계인 셈이다. 따라서 북측은 연합제안에 접근해온 것이 아니라 연합제를 연방제의 초기단계로 포섭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이날 시 당보고회는 연방 창립에 저촉되는 모든 정치적.물리적 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통일투쟁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당국간 대화뿐 아니라 민간급 대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창하고 있어 그들의 통일전략에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金대통령이 이를 연합제안에 대한 접근이라고 강변한다면 이는 북측 통일방안의 진정한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있거나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애당초 6.15 남북 공동성명 때부터 통일방안에 대한 이해의 단추가 잘못 끼워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마치 그것을 큰 성과인양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선전한다면 그것은 정말 통일방안의 정립에서뿐 아니라 남북정책 자체에서 큰 혼선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차제에 정부는 이를 두루뭉실하게 넘어가지 말고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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