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엽기 동영상 느는데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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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동영상은 포털 사이트를 통해 급속히 퍼졌다. 이 남성의 미니홈피가 알려졌다. 20일 하루 동안 2만여 명이 방문했다. 300여 명이 비난 글을 올렸다. 부천중부경찰서는 인터넷 댓글을 추적해 21일 A씨(20)를 붙잡았다. A씨는 지난해 8월 술에 취해 충동적으로 차로에 뛰어들었다고 진술했다. 이 장면을 그의 선배가 촬영했고, 미니홈피에 올렸다는 것이다. 경찰은 A씨를 일반교통방해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네티즌의 불쾌감을 자아내는 엽기적인 영상물이 사이버 공간을 혼탁하게 하고 있다.

지난 19일엔 카데바(해부용 시신)의 신체 일부를 들고 웃고 있는 대학생의 사진이 인터넷을 달궜다. 사진 설명엔 “갈비뼈를 자르는데 아주 쾌감이 들던데”라는 글도 달려 네티즌에게 충격을 줬다. 절단된 신체의 일부는 인터넷에 공개됐다. 이 사진은 국내 모 대학의 보건계열 학생들이 중국의 한 대학에 해부 실습을 가서 찍은 것을 미니홈피에 올린 것이었다. 지난해 12월엔 믹서기에 살아 있는 햄스터를 넣어 죽이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경찰은 영상을 올린 사람을 수사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스캐닝(scanning) 세대’의 일탈 행위라고 풀이했다. ‘스캐닝 세대’는 자신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김봉섭 박사는 “스캐닝 세대는 자신을 표출하려는 욕구가 많은 반면 그 방향을 모른다. 그런 욕구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엽기 영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앞서 걸어가는 초등학생을 뒤쫓아가 허벅지를 발로 걷어차고 도망가는 영상도 비슷한 경우다. 경찰 조사 결과, 그 영상은 중학교 3학년 학생 3명이 재미로 만들어 퍼뜨린 영상이었다.

외국에서도 스캐닝 세대의 일탈 행위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고객에게 배달할 피자를 콧구멍 속에 집어넣는 등 엽기적인 장면을 찍어 올린 30대 피자집 점원들이 기소됐다. 중국에서도 여학생들이 또래 여학생을 무참히 짓밟고 때리는 장면을 인터넷에 올려 중국은 물론 국내 네티즌 사이에서도 비난이 쏟아졌었다. 동국대 곽대경(범죄심리학) 교수는 이런 심리상태를 “병리학적 자기 과시욕구의 표출”이라고 분석했다. 건국대 하지현(신경정신과) 교수는 “가학적인 것을 즐기는 욕구는 누구나 있지만 인터넷은 잡지나 방송과 다르게 수위를 조절하는 편집 시스템이 없어 그대로 노출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효은·심서현 기자

◆스캐닝(scanning) 세대=리딩(reading) 세대가 책을 정독하듯이 어떤 행위의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고 앞으로 미칠 파장을 염려한다면 스캐닝 세대는 컴퓨터가 사진을 순식간에 훑듯, 순간적인 재미에 따라 행동한다. 나중에 잘못된 판단임을 알더라도 그 당시는 제어하지 못한다.

해법은 
포털이 자체 모니터링 강화해야

사회심리학자들은 온라인상에 엽기 영상물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로 ‘미디어 노출 신드롬’을 제시한다. 오프라인 세계에서는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인터넷 세상에서는 자신의 일탈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를 비정상적으로 표출한다는 것이다. 최근 인기 스타의 팬들이 ‘혈서’를 써서 인터넷에 경쟁적으로 올린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인터넷 공간을 ‘사적인 영역’으로 이해하는 것 때문에 일탈 현상이 많아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사자는 개인 홈페이지에 동영상이나 글을 올리기 때문에 다른 네티즌을 의식하지 않고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엽기 영상들은 개인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후에 네티즌들의 퍼나르기에 의해 포털 사이트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주용완 인터넷기반진흥단장은 “인쇄문화에서 글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능력(리터러시·literacy)을 갖춰야 되는 것처럼 인터넷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아는 ‘인터넷 리터러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 단장은 “온라인에서는 장난이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심각한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사회적 맥락을 잘 이해하고 이에 맞게 인터넷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관계자는 “방대한 온라인 세계에서 모든 사이트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신속한 사후 조치를 통해 확산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털사이트나 미디어 업체의 자체 모니터링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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