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상영작]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3면

감독 : 유키사다 이사오 주연 : 오사와 다카오.시바사키 고우.나가사와 마사미 장르 : 멜로 드라마 등급 : 12세

관람가 홈페이지 : www.sesang2004.co.kr 20자평 : 10대 소녀의 감성을 되살리고 싶거나, 그냥 울고 싶거나.

"네가 세상에 태어난 후 내가 없었던 적은 1초도 없었어."(백혈병에 걸린 아키가 며칠 늦게 태어난 열여섯살 동갑내기 남자친구 사쿠에게)

일본 최고의 멜로영화로 손꼽히는 '러브레터'(1995)에서 히로코가 먼저 세상을 떠난 연인의 안부를 물으며 혼자 '오겐키데스카'(おげんきですか)를 외칠 때 눈가가 촉촉해졌던 것처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선 곧 떠날 아키가 혼자 남을 사쿠에게 이 말을 할 때 가슴이 아려옵니다. 죽음이 갈라놓을 그들의 짧은 사랑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기 때문이죠.

사실 '세상의 중심에서…'는 너무나도 순수하고 예쁜 소녀를 백혈병이라는 '상투적인' 죽음으로 몰고가며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최루성 멜로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단지 여기에서 머물렀다면 지난 5월 일본 개봉 당시 700만 관객을 넘기며 '실낙원'(1997)이 갖고 있는 일본 멜로영화 흥행기록을 갈아치울 수는 없었을 겁니다. 물론 320만부가 넘게 팔려 '상실의 시대'를 제치고 역대 일본소설 판매 1위를 차지한 동명의 원작소설의 힘이 절대적입니다. 원작소설은 시골 고교생의 풋사랑을 별다른 사건도 없이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잡아내는 것만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 큰 성공을 거뒀죠.

원작과 같은듯 다르게, 또 다른듯 같게 만든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키 없는 세상에서 단 1초도 살아보지 못한 사쿠가 아키 없이는 단 1초도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은 세월을 견뎌냅니다. 그리고 17년 후 사쿠의 약혼녀 리쓰코가 우연히 "잊힌다는 게 너무 두렵다"는 아키의 음성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하면서부터 이야기는 다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 리쓰코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좀더 극적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세상의 중심에서…'는 여전히 사건보다는 감정에 충실한 영화입니다. 그래서 상영시간 138분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예쁘고도 슬픈 아키와 사쿠의 사랑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은 분명 있습니다. 아키가 사쿠의 스쿠터에 올라타며 시작된 이들의 사랑이 라디오 심야 프로그램과 카세트테이프를 매개로 발전하는 모습은 디지털 시대에 새삼 아날로그식 사랑의 매력을 발견하게 하기도 합니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