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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낭만 기차’ 창밖엔 눈, 눈 앞엔 그대 뭘 더 바라겠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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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눈밭을 헤치고 기차가 달린다. 기차가 향한 곳은 다음 정거장이 아니다. 우리의 옛 추억이다. 하루에 두 번 기차가 들어가는 정선선 기찻길에서. [조용철 기자]

여러분은 언제 기차를 타 보셨습니까.

지하철도 기차라면 오늘 출근길에도 기차를 탔다고 우길 수 있겠지요.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기차 타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 적은 얼마나 되셨습니까.

아마도 금방 생각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기차는 우리 곁에서 한 발짝 이상 멀어졌으니까요. 기차역이 이별과 또 다른 만남의 장소였던 건, 어느새 옛 일이 돼 버렸으니까요. 편리함과 신속함의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 기차는 왠지 지난 시절의 유물처럼 우리네 일상에서 자꾸 밀쳐져 버렸으니까요.

그런데 혹 아십니까. 기차를 타는 행동이 지구를 지키는 일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코레일에 따르면 한 사람이 철도로 1㎞를 이동할 때 평균 26g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된다고 합니다. 반면 자동차로 그 거리를 달리면 이산화탄소가 151g이나 나옵니다. 하여 철도의 수송 분담률을 1% 포인트만 올려도 연 6000억원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 우리나라의 철도 여객 수송 분담률은 지난해 현재 15.3%에 불과합니다. 34.5%에 이르는 일본에 절반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도로 투자율이 철도의 2배가 되지만, 유럽연합(EU)은 우리나라와 정반대로 철도 투자율이 도로의 2배에 이릅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6위이며, 세계 10대 에너지 소비 국가입니다.

사진속 기차는 역에 들어오는 게 아니다. 후진으로 나가고 있다. 바로 여기가 국내유일의 스위치백구간이다. 나한정역에서.


요즘 가장 자주 언급되는 색은 단연 녹색입니다. 경제적 측면을 고려한 녹색 산업이나 녹색 성장은 물론이고, 노는 데도 녹색을 붙여 녹색 관광이 레저 부문의 화두로 자리 잡았습니다. 걷기 열풍이나 자전거 바람이 그 예이지요. week&은 여기에 기차도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거창하게 의미 갖다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기차는 이미 매력 넘치는 여행 수단이자, 여행 그 자체입니다. 여러분은 스무 살 적 배낭 하나 메고 밤 기차 타본 일 없으십니까. 전라선 어느 후미진 간이역에서 새우잠을 잔 적 없으시나요.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 역, 대전발 0시50분 완행열차, 기찻길 옆 오막살이 모두 다 잊어 버리셨습니까.

기차는 추억입니다. 까까머리 신병 시절이고, 무작정 상경했던 한 세대 전 영자씨입니다. 허겁지겁 들이마시던 대전역 막국수이고, 삶은 계란과 사이다 한 병입니다. 기차는 일제의 잔혹한 착취의 현장이자, 근대 한국의 대동맥입니다. 지난 100년, 우리는 플랫폼에서 눈물을 흘렸고 기차와 함께 달렸습니다.

알아보니 요즘 기차 많이 좋아졌더군요. KTX 편하다는 건 상식이고, 전국 일주하는 호화 열차도 생겼습니다. 눈꽃열차·봄꽃열차·단풍열차 등 별의별 관광열차가 다 있고, 기차를 통째로 빌려 어디든 다닐 수도 있다고 합니다. 기차역 중에서 관광 명소가 된 곳도 여럿이지요.

week&은 올 한 해 달마다 기차에 오릅니다. 기차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고 다닐 작정입니다. 아직은 허한 구호에 그치는 ‘저탄소 녹색 성장’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아니, 옛 추억을 잊지 못해 기차를 고집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상상만으로도 기차 여행은 설레는 걸요.

글=손민호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111년 역사 한국 철도 들여다보니…

1899년 9월 18일 경인선이 개통하면서 한국의 철도는 시작됐다. 1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도 많았다. 기차에 관해 미처 몰랐던 사실을 모았다.

●자장면 값의 30배 요금

현재 국내 기차역은 모두 640개, 철도 거리는 81개 노선 3383.6㎞, 연간 철도 이용객은 1억1300여만 명이다. 철도 관련 등록 문화재는 55점이다. 한강 최초의 다리인 한강철도를 비롯해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정희 대통령까지 사용했던 대통령 전용 객차도 포함됐다. 경인선 개통 당시 열차는 시속 30㎞를 못 달렸고, KTX는 330㎞의 최고 시속을 자랑한다. 개통 당시 경인선 요금(노량진~제물포)은 1등석이 90전이었다. 자장면 값이 3전이던 시절이었다.

●소나무 11 그루의 효과

서울에서 부산까지 철도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은 11㎏이다. 자동차로 갈 때는 66㎏이 방출된다. 한편 소나무 한 그루가 연간 이산화탄소 5㎏을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서울에서 부산으로 갈 때 기차를 이용하면 소나무 11 그루를 심는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철도의 에너지 소비량은 승용차의 8분의 1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화물차의 13분의 1이다.

●그리운 이름 비둘기호

기차 이름도 시대를 반영한다. 해방 직후 운행했던 열차는 ‘조선해방자호(1946년)’였다. 한국전쟁 뒤에 ‘통일호(55년)’가, 애국심 고취를 위해 ‘무궁화호(60년)’가 생겼다. 호남선 화물을 운송했던 열차는 ‘증산호(66년)’였고, 맹호·백마·청룡 등 군부대 이름을 딴 열차가 60년대 우르르 탄생했다. 비둘기호란 열차가 있었다. 67년 열차 이름을 등급에 따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역이란 역은 죄다 서는 완행 열차를 비둘기호라고 이름 붙였다. 비둘기호는 2000년 철도 개량화 사업의 결과로 숱한 간이역이 문을 닫으면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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