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개혁 원점에서 생각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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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의료계가 내일부터 또 총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의정(醫政)대화가 한치의 진전도 없이 평행선만 긋는 바람에 또다시 국민만 더 큰 고통의 나락으로 추락해야 할 판이다. 도대체 국민이 무슨 죄가 있는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의료파행을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할 것인지 정부와 의료계에 묻고 싶다.

국민은 큰 불편을 겪고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데도 의료계.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국민은 안중(眼中)에 없는 듯하다.

의료계는 중소병원 봉직의들까지 참가하는 총파업에 들어가겠다며 전국에 지침을 내리고, 정부는 장기파업 대비용 예비비 55억원의 지출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서로가 명분과 원칙에 얽매여 한치의 양보도 없다.

3개월째 준비 안된 의약분업으로 파행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 사회엔 기막힌 현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부 약국에선 환자 불편을 덜어준다는 핑계로 처방전이 없어도 항생제 등을 팔아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기거나, 약효가 비슷하다며 한약을 처방해주는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또 병원에 진료 예약을 해놓은 숱한 환자가 일방적으로 연기 통보를 받고 울화통을 터뜨리고, 일부 중환자들은 아예 돈보따리를 싸들고 미국 등 선진국으로 '진료 원정' 까지 떠나고 있다.

상당수 국민은 죽도 밥도 아닌 의약분업에 불편만 느껴 "도대체 왜 의약분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의료계와 정부는 한심한 태도로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의료계는 완전 의약분업과 지역의료보험 재정의 50% 국고 지원 등 종전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 정부는 사실상 사과까지 했으면서도 현 사태를 풀어갈 시원한 대책 하나 못 내놓고 있다. 양측이 너무 명분과 원칙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정부와 의료계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가 의료개혁에 대한 근본적인 대화를 다시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국민도 지난 의약분업 파행 속에서 많은 것을 학습했다. 완전 의약분업이 약의 오.남용을 근절할 수 없다는 현실도 알게 됐다.

현재대로 의약분업을 시행할 경우 의료계가 처할 위기 상황도 이해하게 됐다. 따라서 결론은 약의 오.남용을 막으면서 의료계를 살릴 의료개혁의 현실적 방안이 무엇인가에 중지를 모아야 한다.

정부든 의료계든 자신들의 명분과 원칙에만 얽매여 환자를 괴롭히고 국민 건강을 이렇게 방치해선 어느 쪽도 결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양측은 모든 전제조건이나 입장.선입견 등을 과감히 털고 진정 국민을 위한 의료체계를 마련한다는 기본 입장과 충정에서 재출발하길 바란다. 아무리 급해도 돌아가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국민을 더이상 괴롭혀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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