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우는 청소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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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치는 것보다 조용히 담배 피우는 게 낫다고요? 공부만 잘 하면 흡연은 용서된다고요? 성인이 될 때까지 참으라는 근거 없는 충고와 당장 끊어라는 대책 없는 꾸짖음으로 흡연을 제재하려 했다면 다시 생각해주세요. 어른은 100개비를 피워야 중독되는 담배. 청소년은 1~2개비로도 중독됩니다. 아이들 금연에도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어른들이 먼저 알아야 합니다.


“3년 전, 흡연 적발 학생 1년 치의 통계를 낸적이 있어요. 100명이 넘더라고요.” 목일중학교(양천구 신정6동) 생활지도부장 이재준 교사의 말이다. 그 통계를 증명이라도 하듯 쉬는 시간 교내 화장실은 너구리굴이 따로 없었다. 비흡연 학생들이 화장실에 가기 꺼릴 정도였다. 일부 학생은 아예 집에 가서 볼일을 보고 왔다. 생활지도 교사가 급습이라도 할라치면 휴대폰으로 미리 연락을 주고받은 학생들이 쏜살같이 사라지고 화장실엔 담배꽁초만 널브러져 있곤 했다.

“흡연 예방과 별도로 금연 교육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지역 보건소에 클린스쿨 프로젝트 시행을 요청했죠. 일산화탄소 측정, 학생·교사·학부모가 함께하는 어깨동무 등반대회, 금연포스터 공모전 등을 진행하다 보니 요즘은 담배꽁초가 많이 줄었어요.”

클린스쿨 사업이란 양천구 보건소가 양천구 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금연·금주 교육 프로젝트다. 청소년 흡연의 심각성을 느낀 학교들이 1년간의 금연 프로그램 계획서를 보건소에 제출하면 그중 6개 학교를 선정해 진행한다. 금연 프로그램을 통해 교내 담배꽁초가 줄어든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단지 교내에서 피우는 일이 줄어든 것일 수도 있다”고 이 교사는 말한다. “담배 연기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학교 안팎에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이들이 담배에 손을 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양천구 보건소가 조사한 청소년 흡연 동기 1위는 ‘성인 모방과 호기심’이며 2위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영등포구 당산동) 이영자 실장은 “청소년들이 흡연하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주변 환경도 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학교는 절대 금연 공간입니다. 그런데 운동장은 포함돼 있지 않아요. 실제로 운동장에서 교사들이 흡연하는 것을 볼 수 있죠. 결국 우리 사회가 흡연에 대해 관대하고 규제도 약하다는 뜻입니다.”

청소년 흡연의 가장 큰 문제는 성인보다 중독이 쉬운 반면 끊는 것은 더 어렵다는 데 있다.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금연클리닉의 이홍수 교수는 말한다. “담배를 한 번이라도 피우면 니코틴에 대한 기억이 평생 남습니다. 담배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는 등의 기억이 뇌에 각인되는 거죠. 금연보다 담배를 참고 있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또 청소년 흡연자의 질환 가능성은 성인 흡연자보다 3배나 높다.

청소년은 금연 의지가 성인보다 낮다. 대개 학생들은 교내에서 흡연하다 적발된 후 금연 교육을 받았다는 확인서를 받기 위해서거나 부모의 강요로 금연클리닉을 찾는다. 이런 경우 금연 상담을 받을 때도 “예” “아니오”란 대답으로 일관한다. 양천구 보건소의 금연상담사 김성주 씨는 이런 청소년을 ‘오무족’이라고 부른다고 털어놨다. “오무족은 다섯 가지가 없다(無)는 뜻이에요. 무기력·무예절·무감동·무관심·무책임이죠.”

김씨는 금연교육에 앞서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신뢰가 쌓인 후 흡연의 문제점과 금연의 필요성을 설명해야 아이들이 납득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면 청소년 시기의 흡연이 몸에 얼마나 나쁜지, 어떻게 하면 금연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금연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일러준다.

“‘금연을 하고나니 나쁜 형들과 마주칠 일이 없어 좋다’던 중학생이 생각난다”는 김씨는 금연에 성공한 후 흡연하는 친구를 데리고 찾아올 때 가장 흐뭇하다고 말한다.

금연에는 보호자의 도움도 절실하다. “부모가 다그치거나 혼내면 역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이 실장의 귀띔이다. “아이와 함께 클리닉 등의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고 금연을 독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사나 부모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요.”

[사진설명]담배를 한 번이라도 피우면 니코틴에 관한 기억이 평생 간다. 또 어릴 때 노출되면 흡연으로 인한 질환 가능성이 성인 때보다 3배 높아진다.

▶양천구보건소 금연클리닉 02-2654-9472
▶영등포구보건소 금연클리닉 02-2670-4780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상담 및
▶금연교실 신청 02-2632-5190

<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

< 사진=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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