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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정치]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Z'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입문에 보면 '착오(錯誤)론' 이라는 항목이 따로 있다. 사람이 어떤 실수를 하고 실언을 하든 거기에는 반드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이유가 있다는 학설이 착오론이다.

요즈음 우리 정치권를 보면 "그건 고발과 기소를 혼동하여 실수를 한 발언이었을 뿐이다" (선거비용 실사개입의혹 개입), "그건 진의가 잘못 전달되어 오해를 한 것이다" , "내가 그 사람을 직접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접근을 해와서 만난 것이다" (한빛은행 의혹)등등 자신들의 말 실수를 변명하기에 급급한 모습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데 착오론에 의하면 그렇게 실언을 한 부분에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고 바로 거기에 사건의 열쇠가 꽂혀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말 실수를 통해 사건의 핵심을 긴박감있게 파고 들어가는 영화로는 'Z' 가 단연 으뜸이다.

'Z' 는 1963년 5월 22일 그리스 야당 지도자 람브라스키(이브 몽탕)가 강대국들의 군사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대중연설을 하는 도중 암살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68년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독재정권이 다스리던 나라에서는 대부분 상영금지로 묶여 있다가 민주화가 된 연후에야 상영이 허락되는 수난을 겪었다.

스페인.인도.브라질.그리스에서 그러했고, 영화가 제작된 지 20년 후에야 겨우 상영이 허락된 한국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Z' 는 '살아 있다' 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자오(Zaw)' 의 첫글자다. 그러므로 제트라고 읽기보다 그리스어 발음으로 제타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살아 있다는 말인가. 람브라스키의 아내(이레네 파파스)가 암살의 배후가 밝혀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가 살아 있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말은 죽은 남편이 살아 있다는 의미보다 정의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살아 있는 정의의 눈을 교묘한 변명과 말장난으로 가리려고 하는 데서 자꾸만 뒤엉키고 있는 느낌이다.

'Z' 에서는 순진한 노동자들을 이용해 암살을 주도한 고위당국자들이 음주운전에 의한 우연한 사고로 처리하라고 담당검사(장 루이 트랭티냥)에게 갖가지 방법으로 압력을 가한다.

상급검사가 회유를 해도 말을 듣지 않자 나중에는 검찰총장까지 나서서 수사관의 수사 방향을 바꾸어놓으려 한다. 그러면서 검찰총장은 수사관에게 "신과 당신의 양심에 따라 처리해야 하오" 라며 고함을 지른다.

여기서 양심을 들먹인 것은 고위당국자들의 각본대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담당검사는 그런 강요된 양심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소박한 양심을 따른다.

그리고 담당검사는 엉킨 실타래 같은 사건을 신문받는 사람들의 말 실수를 통해 하나씩 풀어나간다.

어떤 때는 피의자의 사회에 대한 불평을 꼬투리삼아 공산주의자라고 몰아붙여 피의자로 하여금 철저한 반공단체 회원이라는 고백을 받아내기도 한다. 그 반공단체의 정체야말로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셈이다.

고위당국자들이 야당 지도자를 암살하는 데 'CROC(기독교 왕정주의 전투요원)' 라는 반공단체와 결탁한 사실이 드러난다. 지금 한빛은행 대출사건도 관련 당사자들의 어록만 잘 정리해 'Z' 의 담당검사처럼 착오론을 십분 활용한다면 사건의 핵심은 금방 드러나고 말 것이다.

"내가 사례금을 달라고 한 기억이 있소?" "기억이 없다고 했소. " 이런 대화들은 기가 막힌 대화들이다.

대출압력 의혹도 이런 미묘한 말의 차이를 파고 들어가면 의외로 쉽게 전모가 드러날 수도 있다. 담당검사의 소신과 양심만 살아 있으면 여야간 얽혀 있는 특별검사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조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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