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반도 역할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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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반도가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미국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 새로운 화두와 씨름하고 있다.

해답을 누가 빨리 내놓느냐를 놓고 경쟁이 벌이지는 듯하다. 연구소.관계.대학에 포진한 한반도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거론하는 것은 주한미군.북한미사일을 비롯한 전략문제. 그리고 숨을 돌려 북한경제 분석 등 포괄적인 대북 관계개선에 집중한다.

어느 모임에서나 주한미군 문제는 빠지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의 위상변화에 대비한 강구책을 주문하며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과의 유대.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은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제임스 레이니 에모리대 교수는 "미국의 차기 정부는 남북대화가 진행될수록 한.미간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것에 한반도 정책의 제1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러려면 한.미 행정협정도 고칠 부분은 고쳐야 한다" 며 '새로운 차원의 동맹관계' 를 제시한다.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선 전문가들간에 방법론과 강도의 차이가 나타난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대결정책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을 강조한 페리 전 국방장관의 보고서에 따라 북한을 관계개선의 무대로 끌어내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들이다.

국무부의 국제문제 분석관인 존 메릴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미국의 노력과 나란히 가고 있다" 고 평가한다.

세계은행의 브래들리 뱁슨 자문관은 "남북대화의 진전으로 북한경제를 어떻게 도와야 하느냐는 새로운 의제가 등장하고 있다" 고 분석한다.

그는 "국제 금융기구들은 북한을 상대할 채비를 하고 있다" 고 지적하며 세계은행이 주도해 북한경제를 위한 협의기구를 만드는 것 같은 아이디어도 거론하고 있다.

그는 북한경제가 풀어나가야 할 네가지 과제론을 내놓았다.

첫째는 북한의 경제회복과 경제개발이고 둘째는 북한경제를 중앙통제 시스템에서 시장경제로 바꾸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북한경제를 남한경제와 통합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세계화와 정보화 경제에 적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교류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북한경제의 개선에 대해선 희망을 유보하는 시각도 적잖다. 북한경제 전문가인 미국 기업연구소의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연구원은 "외국의 지원덕분에 인위적으로 증가된 북한의 소비수준을 자생적인 경제회복으로 혼동해서는 안된다" 고 지적한다.

그는 "북한은 노동력의 교육부족과 영양상태의 부실 등 인적자원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 때문에 외국의 전문가들이 지금까지 긍정적으로 평가해온 것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는지 모른다" 고 말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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