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대선 D-1] '피의 내전' 예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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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이 24일의 대선 결과와 관계 없이 대통령직을 당분간 유지하겠다고 21일(현지시간) 밝혀 유고정국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불라토비치 총리는 이날 몬테네그로 민영 TV와의 회견에서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 지더라도 2001년 6월까지 임기는 채울 것" 이라고 말했다.

이는 "대통령당선자는 선거후 15일 안에 취임해야 한다" 는 선거법 규정과 대치되는 발언이어서 정국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야당 연합인 세르비아 민주야당(DOS)의 보이슬라프 코스투니차 후보가 세르비아 사회당(SPS)의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크게 앞서고 있다.

이에 따라 밀로셰비치측이 선거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만일 권좌에서 밀려날 경우 밀로셰비치는 전범(戰犯)으로 국제재판을 받아야 할 처지이기 때문에 결사적이라는 것이다. 현재까지 몇개의 시나리오가 예상되고 있다.

우선 부정선거다. 야당은 밀로셰비치가 대규모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있다며 밀로셰비치의 이름에 미리 기표된 투표용지를 증거로 공개하기도 했다.

24일 밤 선거가 끝나자마자 밀로셰비치측이 결과에 상관 없이 승리를 선언한다는 소문도 나돈다. 야당이 거기에 반발해 소요사태가 발생하면 계엄령을 선포한다는 것이다.

밀로셰비치와 군부가 소요사태 자작극을 꾸민 뒤 이를 빌미로 계엄으로 몰고 갈 가능성도 작지 않다.

유고군 합참의장 네보사 파브코비치 대장은 "선거기간 중 외국 특수군이 야당을 지원하기 위해 유고군 복장으로 침투할 것이며 이 경우 유고군은 가만 있지 않겠다" 고 경고했다.

이른바 '서방음모론' 인데 이를 미리 강조하고 나선 건 계엄령 선포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계엄령이 선포되면 격렬한 국민적 저항과 함께 내전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야당은 유권자들에게 "선거 당일 개표소 앞에 모여 조작 여부를 감시하고 밤에는 도심 광장으로 집결해달라" 며 일전불사를 선언했다.

유고 정부가 연방 탈퇴를 요구하고 있는 몬테네그로에서 유혈사태를 벌여 국민들의 관심을 분산시킬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와 관련, 영국 BBC방송은 세르비아 정부에 고용된 범죄자들이 몬테네그로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훈련 중이라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친서방계 몬테네그로 정부는 선거 보이콧을 이미 선언했다. 이에 대해 밀로셰비치는 지난해 나토 폭격 이래 처음으로 20일 몬테네그로를 방문하고 유고군도 이 지역에서 군사훈련을 실시,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유고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할 경우 서방국가들의 개입이 예상된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밀로셰비치가 표를 조작해 승리를 선언하면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고 경고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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