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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의 세상 탐사

‘먹튀 프랑스 외교’ 대처 방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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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프랑스는 거만하다. 외규장각 도서 문제는 그렇다. 지난 17년간 한국은 프랑스에 당했다. 시민단체인 문화연대가 제기한 반환소송의 결말도 비슷하다. 이번에 프랑스 행정법원은 “취득 과정이 어떻든 프랑스 국가 재산”이라며 기각했다. 약탈(1866년·병인양요)이건 어떻건 한국에 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외규장각 관련 장면은 씁쓸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것은 1993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서울 방문부터다. 미테랑은 의궤(儀軌) 한 권을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내놓았다. 한국 정부는 “마침내 반환을 약속했다”(김영삼 회고록)고 정리했다. 그 직후 경부고속철이 TGV로 결정됐다. 프랑스가 챙긴 실리는 엄청났다. 그 뒤 달라졌다. 외규장각 문화재 반환은 없었다. 프랑스가 “순진한 문민정부를 둘려 먹고 챙긴 것”으로 그 시절 청와대 참모들은 기억한다.

지난주 김장수(한나라당·전 국방부 장관) 의원은 엘리자베스 로랭 주한 프랑스대사를 만났다. 김 의원은 “한국에는 먹튀라는 말이 있다. TGV와 외규장각 도서 반환 거부를 놓고 한국인은 그렇게 생각한다. 문화연대 소송 기각은 불쾌한 기억을 되살렸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07년11월 여수엑스포 유치 때다. 프랑스는 우리를 골탕 먹였다. 그 시절 노무현 정권은 프랑스를 우대했다. 총사업비 5조4500억원 규모의 한국형 헬기사업(KHP)도 그런 경우다. 미국(벨)을 제치고 프랑스(유로콥터)가 그 사업을 땄다. 주력 무기 도입에서 미국 업체의 탈락은 이례적이었다. 프랑스는 막대한 경제적 실익을 얻었다.

그 무렵 프랑스는 한국과 긴밀했고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 변했다. 엑스포 유치 때 한국의 경쟁국 모로코를 밀었다. 노골적이었고 한국을 긴장시켰다. 정·재계 인사들은 파리 총회 지원에 나섰다.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김재철 동원 회장도 갔다. 유치단 A씨의 기억이다. “프랑스 때문에 유치에 실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우리 측 인사들은 프랑스를 성토했다. KHP로 한국에서 막대한 이득을 챙긴 뒤 먹튀 했다고 분개했다.”

프랑스 외교는 영리하다. 노련하게 국익을 챙긴다. 그들은 문화 브랜드를 앞세워 상대국에 파고든다. 문화적 우월감을 교묘히 심는다. 반미의 틈새도 놓치지 않는다. 식민지 경영의 노하우도 있다. TGV와 외규장각, 헬기 건에서 그런 면모가 드러난다.
프랑스의 문화재 외교에 어떻게 대응할까. 80년대 초기 한국이 원전사업 후진국 때다. 그 시절 프랑스는 북한과 대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하려 했다. 전두환 정권은 원전 9·10호기 계약의 파기 카드로 맞섰다. 그리고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공사를 중단시켰다. 그 계약은 프랑스와 맺은 17억 달러의 거액 프로젝트다. 프랑스는 당황했다. 그리고 평양행을 포기했다.

외규장각 협상에는 경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전두환 정권의 전략은 유익한 참고 사례다. 상호 임대, 등가(等價) 교류 협상은 효과도 작고 부적절하다. 프랑스의 환수 거부 논리도 헝클어졌다. 지난해 말 프랑스는 고분 벽화 4점(루브르 박물관 소장)을 이집트에 돌려줬다. 도난당한 이집트 문화재다. 이는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주면 다른 나라 문화재도 반환해야 한다”는 논리와 배치된다.

문화 논쟁은 한국인에게 민감하다. 젊은 세대에게 중국의 이미지는 ‘비호감’ 쪽이 커졌다. 고구려 역사를 왜곡한 동북공정이 큰 이유다. 외규장각 논란은 한국의 문화적 자존심을 오래 상처 냈다. 한계 상황에 다가가는 느낌이다. 어느 순간 프랑스는 ‘비호감’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럴 경우 젊은 세대는 프랑스 와인 대신 이탈리아·스페인 와인을 찾을 것이다. 에어버스 대신 보잉을 사자는 여론도 퍼질 것이다. 프랑스는 경제적 실익을 결정적으로 잃는다.

박보균 중앙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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