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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판사의 ‘정치적 성향 판결’을 경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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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 대한 무죄 판결이 국민들의 법 감정에 혼란을 주고 있다. 국회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여론과 배치되는 데다 판사의 개인적 성향이 판결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 대검 공안부가 입장 발표를 통해 “국민들이 다 보았는데 어떻게 무죄인가. 이것이 무죄라면 무엇을 폭행이나 손괴, 방해 행위로 처벌할 수 있겠는가”라고 거칠게 반발한 것도 이런 의심이 작용한 것이다.

강 대표의 이른바 ‘공중 부양(浮揚) 사건’ 1심을 심리한 서울남부지법 이동연 판사는 무죄 이유를 “정당 대표로서 정당한 항의의 표시”라고 설명했다. 강 대표의 국회 경위 폭행은 ‘해칠 의도가 없었’고, 기물 파손은 ‘단순 과실’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국회 사무총장에 대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에는 “신문을 보는 것이 공무의 일환일 수는 있지만 이미 스크랩으로 신문을 본 뒤여서 공무 중이었다고 볼 수 없다”는 기발한 해석까지 내놓았다.

혐의 사실에 대한 판사의 판단에 왈가왈부할 생각이 없다. 다만 강 대표 스스로도 “제 행동이 지나쳤다는 국민의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시인한 데 비춰 너무 의외의 판결이다. 일반인과 대비해 보면 형평성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파출소에서 소란을 피우고 집기를 부순 시민에게 공무집행 방해죄를 적용해 벌금이든 실형이든 유죄를 선고한 예는 비일비재하다. 이러니 힘없는 서민들이 “법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고 하소연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판사들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103조)고 믿고 싶다. 모든 사건은 발생 과정과 경과, 연루된 사람 등 아주 미세한 차이에 따라 유·무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일부 판결은 판사들의 편향된 성향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서울남부지법에선 강 대표와 유사한 행위에 대해 판사에 따라 엇갈리는 판단이 이어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강행 처리에 항의하며 기물을 파손한 민주당 문학진 의원 등에겐 벌금형이 선고됐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은 있었지만 여하튼 유죄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국회에서 농성을 벌인 민노당 당직자 12명에 대해서는 공소를 기각했다. 이 사건을 맡은 판사는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다.

논란을 빚고 있는 ‘용산 재개발구역 농성자 사망사건’에서 검찰이 항소심 재판부에 기피신청을 낸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재판부가 검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공개 수사기록의 공개를 결정한 데 대해 맞대응하는 모양이지만, 진보 성향의 재판장에 대한 불만 표출로 보인다. 이 재판장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법관윤리강령에 "법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규정한 것은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 등 법률 외적 요인이 판결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판사 성향에 따라 판결이 예단되고, 공정성을 의심받는 사법부 불신 사태는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