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마르소 주연 영화 '피델리티'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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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피델리티(Fidelity:정절)' 를 연출한 폴란드 출신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 작품들은 너무 독특하여서 환영받지 못할 때가 많다.

시적 정서가 담긴 영상(나의 낮은 당신의 밤보다 아름답다),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쇼팽의 푸른 노트), 성적 욕망의 노골적 표현(샤만카) 등이 그의 작품을 말하는 대표적인 수식어들. 천재성이 농후한 감독답게 그는 언제나 전위적이다.

특히 소피 마르소, 이사벨 아자니, 로미 슈나이더 등 당대 프랑스 여배우들을 거침없는 광적 연기로 몰입시킨 감독으로 정평이 나있다.

한때 아내였던 소피 마르소가 주연을 맡은 '피델리티' 는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어느날 남편 외에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됐을 때 육체와 정신 중 어느 것을 지키는 것이 더 순결한가를 묻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제목처럼 정절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그는 온갖 도덕적 문제 투성이인 인물들을 통해 인간은 내부에 선과 악, 유혹.질투.모순 등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사진작가 클레리아(소피 마르소)는 길거리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출판사 사장 클레베(파스칼 그레고리)를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클레리아의 매력에 흠뻑 빠진 클레베는 정략결혼을 약속한 상태지만 이를 파기하고 클레리아와 결혼한다. 클레리아는 남편의 순수함과 자상함에 반해 안정적인 생활에 접어든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젊은 사진작가 네모(기욤 카네)가 끼어든다. 클레리아는 그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이를 안 남편과 갈등한다.

하지만 끝까지 네모에게 잠자리를 허용치 않고 클레베에게 다가서려 하지만 클레베는 그들의 관계를 순수하게 보지 못하고 파멸한다.

어쩌면 지극히 상투적인 이야기 구조 속에 감독은 복잡한 장치를 설치한다.

우선 클레리아.클레베.네모 외 족히 10명에 이르는 주변 인물들을 동성연애자.마약중독자.도덕적 불구자 등으로 설정하고 삶의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세워놓는다.

여기에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와 매스껍다고 느끼는 매스 미디어에 대한 거친 비판 등으로 인해 영화는 복잡다단하다.

실력있는 클레리아가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하고 도색잡지 사진을 찍고, 천주교 주교인 클레베의 형은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잠적하고, 네모는 사람의 눈과 장기를 매매하는 등 참혹한 인간상과 극단으로 치닫는 인간의 욕망을 해부해 관객에게 늘어놓는다.

카메라 역시 처절한 개싸움, 지저분한 쓰레기, 남성 성기 등 역겹고 엽기적인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도발적인 '샤만카' 이후 카메라 움직임이 침착해지고 감성도 풍부해졌다고는 하나 줄랍스키의 리듬을 따라잡긴 쉽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이들에겐 실타래처럼 엮인 인물들의 관계와 파편적인 성격, 그리고 애매한 상황 등 감독의 부족한 배려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줄랍스키가 의도하고 그은 선을 읽어낸다면 그 기억은 명징하게 남는다.

30일 개봉.

신용호 기자

결혼 후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사랑이 찾아왔다. "우린 아무 일도 없었어." 그렇게 몸만 순결하면 되는 걸까. 육체와 마음 중 어느 쪽을 지키는 것이 더 순결한가를 결론 짓기는 결코 간단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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