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블랙 먼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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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주말을 쉬고 난 뉴욕증시의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미친 듯이 '팔자' 주문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월가(街)가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주가는 현기증 나는 곤두박질을 시작했다. 이날 하루 동안 다우존스 지수는 당시까지 하루 낙폭으로 사상 최대인 5백8포인트가 빠졌다.

하룻새 무려 22.6%가 하락한 대폭락이었다. 앞다투어 주식을 처분하려는 투자자들의 아우성으로 브로커들이 주식 매매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월요일의 뉴욕발 충격파는 런던.도쿄(東京).싱가포르.홍콩증시로 이어지면서 전세계적으로 1조7천억달러라는 천문학적 투자손실을 초래했다.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 였다.

블랙 먼데이는 그 후에도 계속된다. 97년 10월 27일 월요일, 다우지수는 10년 전 블랙 먼데이의 하루 낙폭 기록을 뛰어넘는 대폭락세를 보였다. 이듬해인 98년 8월 31일도 블랙 먼데이였다.

전문가들은 월요일의 주가폭락을 '요일효과' 로 설명한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장이 열리지 않으면서 쌓인 악재들이 월요일에 한꺼번에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세계적 대공황을 몰고온 29년 10월 24일의 뉴욕증시 폭락은 '블러디 프라이데이(피의 금요일)' 였다.

다우지수가 포인트 기준으로 사상 최대인 6백17.78포인트의 폭락세를 기록한 지난 4월 14일도 금요일이었다.

엊그제 도하 각 신문들은 1면에 일제히 '블랙 먼데이' 라는 시커먼 제목을 달았다. 대우자동차 매각 차질에다 국제유가 상승, 반도체가격 하락 등 악재들이 겹치면서 종합주가지수가 50.64포인트나 하락, 단숨에 600선을 무너뜨리고 577.56까지 떨어졌다.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위기수습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확산.고조되고 있다.

증시가 불난 호떡집으로 변한 그 시각, 휴전선 인근 임진각에서는 경의선 복원공사 기공식이 열리고 있었다.

오색찬란한 연기가 임진강 철교를 수놓는 가운데 DJ는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냐" 며 감격을 연발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민족의 애끓는 외침이 실현되는 민족의 대축제라고도 했다. 각 신문 1면에 나란히 실린 증권사 객장의 우울한 시세판과 경의선 복원공사 기공식 장면을 보면서 제2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걱정한 사람이 비단 나뿐이었을까.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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