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익의 인물 오디세이] '공동경비구역 JSA' 제작자 심재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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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본지 독자 제위께서는 잘 아시리라 믿지만,중앙일보가 매해 말 각계 인사들을 선정해 ‘올해의 새뚝이’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제도가 있다.

새뚝이란 기존의 관행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정신과 자세로 새 판을 열어젖히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우리 말을 사랑하는 통일운동가 백기완씨가 이름지었다.

1996년 문화계 인사를 대상으로 처음 시작한 새뚝이 선정은 98년부터 정치.경제.사회.체육 등 각 분야로 확대돼 송년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96년 첫 새뚝이는 뮤지컬 ‘명성황후’를 만든 윤호진,시인 김혜순,발레리나 김지영 등등과 그 해 영화 ‘접속’을 제작한 심재명(38)이었다.‘접속’은 독특해서 신선했다.남녀 주인공이 만나고,싸우고,또 만나는 따위의 멜로 방정식을 과감히 버리고,PC통신이라는 익명의 젊은 풍속을 영화 속 소통의 매체로 채택한 ‘접속’은 그 실험의 힘으로 서울에서만 68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 해 새뚝이 인터뷰차 신문사를 찾아온 초등학교 6년생 체구 정도의,톰보이 같은 인상의 심재명을 보며 필자는 “저 친구 일 한번 크게 낼거다”라는 확신 비슷한 걸 느꼈다.

제작자로 나서기 전 이미 흥행성공작인 ‘결혼이야기’‘세상 밖으로’‘닥터 봉’‘게임의 법칙’따위의 홍보마켓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접속’의 성공은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제작자 심재명은 ‘접속’에 이어 ‘조용한 가족’으로 장타를 치고 올해 ‘해피엔드’로 솔로홈런쯤을 날리더니 기어코 장외 만루홈런을 폭발시켰다.

바로 ‘공동경비구역’이다.이 영화는 4백여만명의 관객을 운집케 한 ‘쉬리’의 기록을 능가하느냐 마느냐는 화제 속에,개봉 1주일만에 전국 관객 1백만을 넘어서는 신기록을 세웠다.

수익으로 따져도 제작비 30억원인 이 영화의 광고비 등을 다 포함한 손익분기점이 1백만 관객이라니 지금부터는 갈퀴로 쓸듯 돈 챙길 일만 남은 셈이다.

이때문에 배 아파 할 이유는 없다.그 돈을 우리 영화에 재투자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다.영상 분야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으로 직결된다는 시대가 아닌가.

아무튼 이 ‘꼬마 아줌마’의 무엇이 그녀의 손을 ‘미더스의 손’으로 만든 것일까.그녀의 결론은 간단했다.

▶내가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그것이 관객이 바라는 이야기다.▶제작은 기존의 흥행 관행에 기대지 않는 도전 마인드로 일관한다.도전하지 않으면 오히려 관객의 시류에 뒤진다.▶관객을 공감케 할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해 리얼리티 따위의 제품관리를 철저히 한다.관객의 욕구에 의한 관리를 잊지 않는다.

사실 이 정도면 영화든 뭐든 상품 생산자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다.문제는 누구는 아는 것을 실천하고,누구는 머뭇거리는 그 지점에서 승부가 갈라지는 것이다.

세칭 명문대와는 거리가 있는 학교를 나와 극장 사원,영화사 사원으로 현장을 익히고,작은 영화홍보사를 차려 뛰다가,이제는 어쩌면 세상이 손바닥만하게 보일만한 위치까지 커져버린 그녀에게 “붕 떠서 세상이 우습게 보이지 않느냐”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안 그렇다는 근거를 대라”고 하자 그녀는 “우리 세대는 어떠다 영화 일을 하게된 옛날 제작자들과는 달리 정말 영화가 좋아서 영화에 목숨을 건 세대며,마침 시운도 따라 줘 여기까지 왔으니 붕 뜨고 말고가 없다”고 했다.

시운이란 우리 영화가 지식인 사회의 화젯거리가 될만큼 대접이 달라졌고,멀티플렉스 영화관이나 기관투자 참여 같은 환경 변화에 빚졌다는 뜻이다.같은 운이라도 복권 당첨과는 격이 다른 것이다.그녀는 스스로를 ‘영화소녀’라고 했다.

-‘영화소녀’?

“중고교생땐 미성년자관람불가 영화도 불사했다.그 때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10년 넘게 영화감상문을 일기에 꼬박꼬박 썼다.프랑스문화원의 ‘시네클럽’이란 동호회에 가입해 갈증을 풀었고,영화잡지의 대학생 모니터가 돼 공짜로 영화를 볼 땐 정말 행복했다.”

-극장이 첫 직장이었나.

“87년 졸업 후 출판사에서 한 4개월 일하다 서울극장에서 광고 카피라이터를 뽑는다고 해 지원했다.그 때는 지금처럼 전문 마케팅·디자이너가 없던 시절이어서 광고·홍보·배급 등을 두루 구경하며 배웠는데 그게 기초가 됐다.”(이 부분은 제작사 ‘신씨네’의 대표 신철과 비슷하다.필자가 영화 담당 기자 시절 명보극장에서 일하는 신철을 봤는데 필자의 생각은 ‘저 친구 서울대씩이나 나와 뭐하고 있나’였다.)

-히트한 카피는 뭐였나.

“‘결혼이야기’의 ‘잘까 말까 끌까 할까’가 기억난다.신혼부부의 성적인 마음의 풍경을 표현했는데 좀 유치하지만 인기를 끌었다.”(신철이 제작한 ‘결혼이야기’는 포스터에 남녀 배우의 뒷퉁수만을 보이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이 무렵부터 심재명 등등의 감각적인 세대의 파워가 영화계에 부상한다.)

-기자들을 상대로 홍보하는 게 좀 고된 일인데 생글거리며 돌아다니던 모습이 기억난다.

“영화 일을 하는 자체가 행복했다.짖궂은 기자는 그러려니 하면 그만이었다.홍보자료를 밤 새워 만들며 어떻게 하면 관심을 끌까 궁리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잘된 영화란 뭘까’연구하며 지낸 그 때 일이야말로 오늘의 바탕이 됐다.”

영화계는 입이 좀 험한 편인데 그 당시 심재명이 근무하던 영화사 사장의 표현을 빌리면 그녀는 “독한 X”이 된다.그런 독한 마음으로 그녀는 92년 기획·홍보사인 ‘명기획’을 차리고

‘그대 안의 블루’라는 영화를 시발로 여러 편의 자체 기획을 히트시키며 오늘에 이른다.

-제작자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계기는 뭔가.

“마침 대기업이 영화투자에 뛰어들어 제작비 조달이 쉬워졌다.프로듀서의 시대가 온 셈이었다.기획사를 차린 것도 자체 제작이 목표였다.제작자로서 영화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고 싶었다.94년 결혼하고(남편은 ‘장산곶매’라는 영화운동을 하던 이은)이듬해 남편과 함께 ‘명필름’을 설립했다.나는 상업영화에만 몰두하고 있었고 남편은 영화의 정치적 기능에 더 관심을 뒀다.둘의 입장을 상호보완해 영화로 결합하자고 했는데 이것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낸 것 같다.”

-첫 제작품인 ‘코르셋’은 완성도에 문제가 있었지 않았나.

“뚱뚱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여성의 자아발견을 주제로 한 어쩌면 첫 ‘여성주의 시각의 영화’여서 의미는 적지 않다고 본다.완성도는 물론 아쉽다.서울에서 15만명쯤 동원해 그럭저럭 수지를 맞췄다.”

-제작 심재명이라는 자막이 오를 때 기분이 어땠나.

“계면쩍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아무튼 숙제를 끝낸 것같은 기분이었다.이제 영화를 내 이름으로 계속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영화의 모티브는 어떤 식으로 찾아내나.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보고 겪고 느끼는 것,나아가 그들이 느낄 수 있는 무엇을 제품관리가 잘 된 영화로 보여주는 것이다.‘코르셋’은 뚱뚱한 여성의 자아 문제며 ‘해피엔드’는 세기말 우리 사회의 가정 붕괴를 떠올렸고 ‘공동경비구역’은 판문점이라는 한국의 특수지대에 있는 젊은 군인들의 영화적 상황이다.”

-모티브만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닐테고 자신만의 제작 노하우가 있는가.

“‘아,이전에 이런 게 먹혔으니까 이번에도 그런게 먹힐거야’라고 생각해 시도하면 백전백패다.나는 나의 이 이야기로 대중과 소통해야겠다는 절실한 창작 욕구에서 출발해야 한다.‘나는 왜 이야기를 하고 싶지’라는 자문을 정확한 해답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연구하고 거기에 과학적으로 맞춰야 한다.이는 관객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방식이다.요컨대 이런 스타,이런 소재,이런 감독이 잘됐지 하는 기존의 관행에 기대어 출발하면 아류가 되기 쉽고 매너리즘에 빠지며 오히려 시류에 뒤지는 영화가 되고 마는 것이다.”

-‘접속’으로 기반을 탄탄하게 구축했는데 지금 한 말을 ‘접속’에 비춰 보면 어떤 점이 그런가.

“아이디어는 장윤현 감독의 머리에서 나왔다.문제는 제작 후 완성도와 관객의 공감이었다.영화계에선 대부분 이 영화 기획에 회의적이었다.

멜로드라마에 키스 신 한 번 안나오니 딱딱해서 장사가 되겠는냐는 것이었다.그래서 시나리오 작업에만 2년을 끌었다.

그 사이 채팅 신세대의 라이프 사이클과 풍속을 면밀히 조사하는 등 젊은 관객의 새로운 문화를 영화에 녹이고 음악으로 (‘접속’으로 사라 본의 노래 ‘러버스 콘체르토’는 60년대 이후 30년만에 이 땅에서 다시 유행하는 이변을 연출했다.또 영화 삽입 음반의 시장을 넓히는 기폭제가 됐다)밋밋한 부분을 보완했다.”

-‘공동경비구역’의 성공은 예측했었나.

“이렇게까지 호응할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다만 리얼리티의 개연성을 철저하게 살려내면 새로운 소재에 대해 젊은 관객이 외면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폭발적인 호응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우선 완성도에 관해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본다.이 점은 우리의 기대와 맞아 떨어졌다.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 자체의 질이 아닌가.

다음은 분단이라는 소재가 신선하다고 느꼈을 것같다.러브 스토리도 아니고 폭력물도 아닌 군인 이야기인데 아무도 다루지 않았으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

-관객의 의표를 찌른 것인가 아니면 관객의 욕구를 읽어낸 것인가.

“결과적으로 의표를 찌른 것일 뿐이다.우리는 우리가 보여주고픈 소재를 정면으로 다뤘고 이를 관객이 받아들인 것이다.이런 점에서 우리 영화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이걸 잘 살리는 것이 우리 영화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첩경이 된다.”

그녀의 별명은 심통이다. 제작 과정에서 불평불만이 많아서다.

원로급 제작자 황기성은 '공동경비구역' 의 성공을 보고 그녀에게 "고맙다" 는 말로 축하했다. 어려운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 젊은 후배가 대견했을 것이다.

이헌익 스포츠.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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