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선 신자유주의, 보수선 민중주의라 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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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었고, 밖에서는 평온하게 보일 때에도 안에서는 매일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안병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취임 9개월의 소회를 담은 편지를 지난 3일 가까운 지인에게 보냈다. 이 편지는 다음날 교육부가 정책을 자문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교수.교사.학부모.시민단체 등에 똑같은 내용의 e-메일을 보냄으로써 공개됐다.

◆개인 심경=안 부총리는 편지에서 먼저 "말이 아홉달이지 하루하루를 정말 천날처럼 힘겹게 보냈다"며 요즘의 어려운 심경을 전했다.

그는 "세상에서 교육열이 가장 치열한 나라, 전 국민이 교육전문가인 나라, 국민 대부분이 교육과 연관해 작고 큰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사는 그런 나라에서 교육부 수장을 한다는 게, 그것도 한번 본때 있게 잘 해보겠다고 나서는 게 얼마나 무모하고 미련한지 제가 모를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이 일을 두번째 맡을 때는 여간 모진 결심을 한 게 아니다"고 내심을 털어놨다. 안 부총리는 1995년 12월 21일부터 97년 8월 5일까지 교육부 장관을 지낸 바 있다.

◆교육문제 갈등 극심=안 부총리는 "우선 힘든 것은 교육에 대한 주요 현안에 대해 우리 사회가 너무 나뉘어 있기 때문"이라며 "대부분의 교육쟁점의 경우 여론이 반반씩 갈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얼핏 보기에 교육문제는 탈(脫)이데올로기의 영역인 듯하지만, 실은 거기에 이념적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문제해결에 나서면 나설수록 사회적 갈등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기 일쑤라는 것이다. 안 부총리는 자신의 이념적 지향이 대체로 중도개혁적이며 이념이나 교조보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는 편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그러나 쟁점이 있으면 진보적인 쪽에서는 저를 시장과 경쟁만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자로 공격하고, 보수적인 진영에서는 평등에만 집착하는 반(反) 시장주의자, 민중주의자로 매도할 때가 많다"고 강조했다.

◆평준화는 보완.개선 대상=안 부총리는 "'어떤 경우도 평준화는 고수돼야 한다'라든가, '평준화는 절대적으로 해제돼야 한다'는 입장은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며 자신은 '평준화는 보완.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평준화의 기본틀은 유지하되, 그 안에서 다양화.특성화.자율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함으로써 내적 역동성과 경쟁력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교등급제 불허"=안 부총리는 사회적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고교등급제'와 관련,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학교 차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기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고교 서열화가 빠르게 촉진돼 우수고교로의 진학경쟁이 과열되고 사교육 열풍은 더욱 무섭게 불어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고교등급화 불허 입장을 계속 지켜나갈 것임을 밝혀둔다고 강조했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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