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송찬호 '찢어진 불빛'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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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내 몸에 향기가 아직 남아 있을까

마음을 갖다 버렸는데

몸 안에서 날개 치는 이 나비 나비 나비,

내 몸이 아직 낫지 않은 것일까

그렇다면 나비 한 마리 채집해 볼까

일테면 화사한 무늬의 호랑나비, 혹은 그렇게 오래 묵은 편지

이제 소란스런 비가 그쳤다

이 편지 상자는 구름 같다

우리 집 딸들은 잠시 명랑해진다

나는 시시한 편지 하나를 읽는다

누군가 사랑을 보내왔고

누구인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 송찬호(41) '찢어진 불빛' 중

춘향이는 꽃이고 몽룡이는 나비고 하던 사랑 얘기는 틀린 것일까□ 사내의 몸에서 웬 향기□ 마음을 갖다 버렸는데도 나비가 날개를 친다니 참 희한한 꽃밭인 남자도 다 있구나.

나비는 그러니까 오래된 묵은 편지고, 편지는 사랑이 되고, 그것을 받아들인 나는 불빛이 되고. 저 장자(莊子)가 꾸었다는 나비꿈을 아직도 꾸고 있는가 시인이여, 호랑나비 같은 넓고 화사한 사랑의 날갯짓을.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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