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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오락가락 에너지값 정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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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8월 말 산업자원부는 현재 100:49:28로 돼 있는 휘발유:경유:LPG(수송용)의 판매가격을 "2002년 1차로 소폭 인상한 뒤 2003년 100:75:60으로 올린다" 는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 직후 예상대로 엇갈린 의견들이 나왔다.

'여론 선도층' 인 택시기사들은 택시요금을 올리든지, LPG가격을 올리든지 택일하라고 나왔고, 장애인들은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까지 벌였다.

승용차 대신 LPG 승합차를 자가용으로 구입했던 시민들은 '속았다' 는 느낌을 가졌고, 일반 휘발유 차량 운전자들은 그들대로 "그럴줄 알았다. 그렇다면 나도 앞으로 LPG차 사겠다" 는 반응들이었다.

이어 열흘 뒤 당정협의를 거친 재정경제부의 최종안.

"2001년 100:52:32, 2002년 100:56:38,…2006년 100:75:60" . 산업자원부의 계획보다도 오히려 최종 목표시점을 3년 늦췄다.

정부의 설명에는 하루빨리 왜곡된 에너지가격의 형평성을 맞춰 절약을 유도하고 환경오염도 줄인다는 당초의 취지는 간 곳 없고 "LPG가 서민들의 연료이며, 물가 부담 등을 고려해서…" 라는 수식어만 앞세워졌다. 결국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을 반영, 정부안을 후퇴시켰다는 얘기다.

이미 산자부 발표 때 논란을 거친 때문인지, 아니면 더 복잡해진 숫자때문인지, 또 아니면 이같이 축소된 가격조정안에도 불구하고 택시기사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불만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때문인지, 선뜻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LPG 배출가스의 환경오염문제는 제쳐두고라도 "LPG의 생산원가가 휘발유의 90%인데 어떻게 가격은 3분의 1이냐" 는 기본적인 지적도 이제는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이번 정책의 최대 피해자일지 모르는 '휘발유 승용차량 운전자' 들도 매일 최고가를 경신하는 원유가격 때문인지 휘발유 차량의 상대적 불이익 문제는 잊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전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이상한 에너지가격을 지불하고, 오염된 공기를 마실 당사자가 우리의 아들.딸이라도 과연 이렇게 "좋은 게 좋다" 는 식으로 미룰 수 있을까.

국제 유가는 다락같이 오르고 있는데,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언제까지 정치적 배려만을 앞세워 왜곡된 가격체제를 끌고 가려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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