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금 거두기보다 잘 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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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수(稅收) 증대를 통한 균형재정의 조기회복에 초점을 둔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발표되었다.

일반 여론은 정부 스스로 5조1천억원이라고 추정한 국민부담 증가분을 우선적으로 지적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가을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진행되는 세제개편이 과연 납득할 만한 논리와 장기 비전의 틀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효율.공평성 우선 고려

효과적인 정부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수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세금은 다양한 방식으로 걷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제 주체의 행동을 왜곡시켜 어느 정도의 비효율을 초래하게 된다.

같은 세금을 거두더라도 이러한 왜곡효과가 작은 정책을 택해야 한다.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세지원과 같은 적극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엔 왜곡효과와 세수감소라는 두 가지 비용을 동시에 감안해야 한다.

조세는 또한 소득재분배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세부담의 형평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소득분배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정부의 세제개편을 보면 과거나 지금이나 세금을 통해 무엇을 하겠다는 얘기는 많지만 이것이 초래할 수 있는 비효율이나 불공평에 대한 언급은 드물다.

비용측면을 무시하다보니 자연 세금을 시혜적인 용도나 자의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축을 늘리는 일에서부터 재벌을 혼내주는 데까지 우리나라의 세금은 정책수단으로서 지나치게 남용됐다.

이러다 보니 세제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정책효과는 불분명한 데 비해 효율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경우가 늘게 되었다.

이번에 제시된 정부의 세제개편안도 각론은 모두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만 총체적으로 볼 때 과연 경제에 얼마나 득이 될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모두들 국민 1인당 세 부담 계산에 열을 올리지만 보다 중요한 사안은 세금 1원이 얼마나 제대로 걷히고 쓰이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균형재정을 왜 정부지출을 삭감하지 않고 세금을 올려서 달성하려 하는지, 올해 예상치 못한 세수증가가 10조원이 넘는다는데 왜 몇 년에 걸쳐 5조원을 더 거두겠다고 나서는지 설명이 없다.

굳이 세수증대가 필요하다면 담뱃값과 기름값을 올릴 것이 아니라 잘 살면서도 세금 안내는 사람들과 기업들의 탈세를 단속하는 것이 우선순위일 것이다.

교육세를 올리기 전에 교육예산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집행되는지 따질 필요가 있다. 개편안에 담긴 식의 단편적인 방책들로 기업경쟁력과 복지수준이 얼마나 향상될지도 의문이다.

이런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없이 이런저런 지원을 약속하는 세제개편안이 국회로 향하면 또 얼마나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덤벼들지 불을 보듯 뻔하다.

똑똑한 세제담당 공무원들이 밤을 새워 만든 지원제도가 복잡한 세부규정에 묻혀 사문화하고 정치적 타협에 의해 왜곡될 바엔 차라리 세수를 아끼고 효율비용을 줄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비효율과 불공평으로 얼룩진 현행 조세제도는 근본적으로 개혁돼야 한다. 지금은 미시적인 개편이 아니라 거시적인 큰 틀을 짜야 할 때다.

금융의 발목이 묶인 개방시대에, 너나할것 없이 제 몫 찾기에 바쁜 민주사회에서 성공한 정부로 남기 위해서는 재정을 바로세워야 한다.

약속보다 실속을 제공할 수 있는 남북경협, 예상하기 힘든 외부충격을 정부가 나서 흡수할 수 있는 여유 있는 국고, 갈등보다 합의를 유도할 수 있는 복지정책을 위해서는 정부의 살림이 튼튼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세제의 틀부터 바꾸어야 한다.

***지원.감면 대폭 줄여야

세수기반을 넓히고 비효율과 불공평을 줄이는 최선의 방식은 각종 지원과 감면제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필요한 지원은 늘어난 세수를 재원으로 지출예산을 통해 투명하게 제공하는 것이 낫다. 에너지관련 세제를 간소화해 비효율을 줄이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세수기반 확대는 손쉬운 간접세보다 비과세와 감면이 만연해 있는 직접세부터 손대는 것이 진지한 정부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연금소득공제는 조삼모사(朝三暮四)식의 세율비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파산 위기의 연금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추가적 정책개발이 급선무다. 지금은 근본으로 돌아갈 때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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