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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 해설' 15권 집필 정진석 대주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69)대주교가 13년에 걸친 '교회법 해설' 15권의 집필을 마쳤다.

14권까지는 이미 출간됐으며, 마지막 15권(색인)은 인쇄중이다. 교회법 해설서로 동양권에선 처음이며 15권의 방대한 분량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다.

필생의 역작을 내놓고서도 대주교는 자랑할 생각을 않는다. 지난해 평생 모은 돈 5억원을 꽃동네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대학에 내놓고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어렵사리 인터뷰 기회를 얻어 명동성당 옆 서울교구청 집무실을 찾았다. 집무실은 한 쪽 벽면에 가득한 서가와 책상, 소파외에 별다른 가구나 장식이 없어 마치 노교수의 연구실을 찾은 듯 했다.

"사명감을 가졌으니까 했지. 아니면 못했을 거야. 처음 마음 먹고부터 39년이나 걸렸어. "

대주교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리부리한 눈빛을 부드러운 웃음으로 가리면서 탈고의 소감을 밝혔다.

그가 처음 교회법을 국내에 소개하고자 마음 먹은 것은 1961년 사제서품을 받던 해였다. 교회법이 일본어로 처음 번역된 해이기도 하다.

젊었던 정신부는 "교회법을 한국어로도 번역해야겠다" 고 결심했다. 신부양성기관인 성신고등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면서 라틴어로 쓰여진 교회법을 연구하고 번역했다.

그러던 중 로마 교황청에서 교회법을 개정한다는 얘기를 듣고 번역을 중단한 뒤 70년 로마 성 우르바노 대학원에 유학해 교회법을 공부했다.

주교 서품을 받고 귀국한 그는 83년 개정법이 발표되자마자 다시 번역을 시작했다. 마침 교회법을 공부한 신부들이 번역위원회를 만들어 그를 위원장으로 추대해 번역작업에 가속이 붙었다. 89년 교회법 한국어판이 출간된 것은 대만에 이어 동양권에서 두 번째였다.

"번역을 하다보니 교회법이 쉽지않아 법조문만 보고도 제대로 알기가 힘들게 돼있어. 해설서가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욕심을 냈지. 88년 시작했으니까 해설서 쓰는 데만 13년이 걸렸네. "

교회 사무에도 바쁜 대주교가 해설서를 집필하겠다고 생각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교회법이 라틴어로 쓰여있는데, 국내에서 라틴어를 대주교 만큼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주교는 낮시간 동안 교회일로 바쁘기에 주로 새벽 시간에 일어나 글을 썼다. 거의 평생을 교회일과 교회법 연구에 바쳤기에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 고 한다.

거의 유일한 '다른 일' 이란 두 가지 일을 잘 하기위해 건강을 돌보는 것. 청주교구장 시절에는 우암산을 자주 올랐는데, 서울로 옮기고는 남산을 올랐다가 공기가 나빠 등산을 포기했다. 대신 매일 저녁 식사후 성당구내를 40분간 산책한다.

천주교와 관련된 현안들에 대해서는 "교회는 집단지도체제니까" 라며 말을 아낀다. 대주교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 , 즉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원칙론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먼저 평양교구장 서리인 내가 직접 북한을 방문해 그 곳의 현황을 확인해야지. 해방 당시 5만명이던 천주교 신자들과 50여명의 사제들은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알아봐야겠고, 또 교황을 초청한 북한의 의중도 정확히 파악해야 하니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지. "

온화하고 소탈한 겉모습과 달리 로만칼러 속에 감춰진 소신과 원칙에는 한 치의 빈 틈도 보이지 않았다.

오병상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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