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로 한국형 판타지 액션 돌풍 최동훈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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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우치’에서 초랭이(유해진)가 입었던 코트를 걸쳐 입은 최동훈 감독. 전작 ‘타짜’에서 유해진 김혜수 커플과 작업했던 그는 열애공개 이후 “두 사람의 사랑은 축복하지만 이제는 한 영화에 동시 캐스팅은 힘들겠구나 생각하니 아쉽더라”라며 크게 웃었다. [오종택 기자]

연초 극장가엔 ‘아바타’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영화 ‘전우치’의 선전도 만만찮다. 개봉 2주 만에 관객 440만 명을 넘어섰다. 500만 고지도 멀지 않다. 지난해 1000만 영화 ‘해운대’를 추격하며 ‘쌍끌이’ 흥행한 ‘국가대표’와 비슷한 모양새다. 고전소설 ‘전우치’를 현대화한 유쾌한 판타지 액션물이다. ‘아바타’급 첨단 컴퓨터그래픽(CG)과 스펙터클은 없지만 소재와 상상력에서 한국적 판타지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다.

‘범죄의 재구성’‘타짜’로 매번 흥행과 비평을 사로잡아온 최동훈(39) 감독을 11일 만났다. ‘국가대표’의 김용화 감독과 함께 상업장르 영화의 외연을 넓히고 있는 주역이다. “무대인사 등 일정을 소화하느라 ‘아바타’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했다.

-긴박한 범죄물을 만들어온 감독에겐 의외의 선택이다. 또 18세 관람가인 전작들과 달리 12세 관람가다.

“삶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타짜’를 15세로 찍으면 반칙이듯이 ‘전우치’를 18세로 찍는 것도 반칙이다. 즐겁게 놀아보자는 영화다. 나 스스로를 12세 소년으로 돌려놓은 영화다. 영화를 보신 장모님이 ‘아바타’가 성난 사자라면, ‘전우치’는 귀여운 고양이 같다고 하시더라.”

-전우치의 어떤 점에 끌렸나.

“고전을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삼국유사』 같은 것 열심히 읽었다. 그간 왜 전우치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너무 가볍다고 여긴 것 같다. 난 그 가벼움에 끌렸다. 짓눌린 데도, 콤플렉스도 없고 슈퍼 히어로도 아닌 유쾌한 안티 히어로, 악동이다. ‘해리포터’처럼 우아한 판타지 대신, 전래동화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개가 사람으로 변하고 구름 타고 내려오는 식의 황당무계함, 허무맹랑함의 재미 말이다.”

-십이간지 동물이 요괴가 되는 등 동양적 판타지가 흥미롭다.

“우리에게는 고전이라는 자산이 있다. 그걸 넙죽 받아먹은 거다. 전우치가 부적을 총처럼 차고 다니는데, 그런 식으로 동양적 세계를 웨스턴 무비와 결합시키고 싶었다. ‘문지방을 밟지 마라’‘마가 낀다’처럼 아직도 일상에 남아있는 도교적 세계도 보여주려고 했다. 도술은 근본적으로 거짓말, 환영인데 그게 영화와 비슷하다. 남들을 놀라게 하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현실로 만들어 홀리는 것, 특수효과나 CG야말로 현대적 도술이다.”

-CG와 액션연출의 원칙은.

“CG 장면이 1400 샷으로 국내 영화 가운데 가장 많다. 하지만 별 티가 안 날 꺼다. CG 전략은 위용을 과시하지 말자, 가급적 숨기자였다. 사람들이 CG라고 생각하는, 도입부 전우치가 구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이나 10명의 전우치가 싸우는 장면은 오히려 아날로그적으로 찍었다. 40m 높이에 와이어를 설치해 내려오며 찍었는데 미끈하지는 않아도 뭔가 무심한 느낌을 줄 수 있어서다. 강동원의 둔갑술 장면은, 10명의 전우치에게 각각 캐릭터를 설정해 연기한 후 합성했다. 또 중국영화같이 화려한 액션은 따라 하지 않으려 했다. 신체 접촉을 최소화하고 서로 떨어져서 기운만으로 싸우는 ‘멘탈(mental) 액션’을 선보이려 했다.”

-강동원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했다.

“그간 주로 연극무대 출신의 배우들과 작업했는데, 강동원은 연기에 대한 내 생각마저 바꾸어놓았다. 고도로 절제된, 기품 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가 있다면 매혹을 풀풀 뿜어내는 배우도 있다. ‘타짜’ 때 모니터 보면서 ‘조승우 정말 연기 잘한다’ 이랬는데 이번에는 ‘강동원 진짜 매력 있다’ 이랬다. 배우는 무조건 매혹이다. ‘아침 햇살처럼 신선하고 정오의 햇살처럼 따뜻하다’ 는 바이런의 시가 생각나는 배우다.”

-김윤석·백윤식·유해진·김상호 등 연기파 최동훈 사단이 총출동한다.

“캐스팅이 영화의 반이다.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시점도 배우가 대사를 칠 때다. 사실 배우가 대사 치기 전에는 시나리오가 좋은지 나쁜지도 잘 모르겠다. 배우가 이 대사는 잘못된 것 같다고 하면 즉각 수정한다. 연기에 대해서는 특별한 주문이 없는 편이다. ‘빨리 해달라’는 말을 자주 한다. 미리 생각해서 준비한 것처럼 하지 말고 현장에서 방금 나온 것처럼 해달라는 얘기다. 배우에게 영감 받아 시나리오를 쓰기도 한다. 사람으로 둔갑한 개 초랭이(유해진)를 쓸 때는 막연해 시나리오가 안 써졌는데, 같이 술 먹고 나서 유해진을 쓰면 되겠다 싶었다. 유해진은 열심히 동네 개들을 관찰하고 다녔고. 나는 ‘연기를 개같이 해주세요’ 이렇게 부탁했다. 하하하”

-청계천 배경에, 쥐 형상의 요괴가 나와 정치적으로 읽는 이들도 있다.

“오해다. 정부 비판하려면 그런 식으로 안 했을 거다. 원래는 남대문에서 찍고 싶었는데 남대문이 불타버려서 가장 슬펐던 사람의 하나가 나다. 청계천은 빌딩 숲이 병풍처럼 펼쳐져 좋은 공간이었다. 이번에 촬영하면서 옥상에 많이 올라갔는데 서울이 참 아름다워졌더라.”

양성희 기자 ,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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