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돋보기] 천안‘버버리’가 영국‘버버리’ 눌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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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라는 상호를 쓰는 천안의 노래방이 영국 버버리사와의 상호명 사용 법적 분쟁에서 이겼다.

대전지방법원에 따르면 버버리사는 지난해 8월 노래방 업주를 상대로 부정경쟁행위 금지 및 2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국내 대리인을 통해 2008년 8월 버버리라는 이름이 들어간 간판을 내릴 것 등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노래방 업주가 응하지 않자 이 같은 방법을 택했다.

버버리사의 주장은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자사 상표와 같은 이름으로 2003년 11월부터 노래방 영업을 함으로써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이 금지하는 부정경쟁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버버리 상표는 특허청이 해마다 발행하는 ‘주로 도용되는 국내외 상표집’에 계속 수록될 정도로 자주 도용돼 왔다.

그러나 법원은 최근 버버리사의 청구를 기각, 노래방 업주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을 맡은 대전지법 민사합의13부(윤인성 부장판사)는 일단 버버리가 저명한 상표이고 노래방 상호가 버버리 상표와 비슷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노래방 상호로 버버리를 사용했다고 해도 이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부정경쟁행위는 타인의 상표나 영업표지와 같거나 비슷한 것을 사용해 타인 상표 등의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하는 행위”라며 “부정경쟁행위가 성립하려면 단순한 추상적 위험의 발생만으로는 부족하고 식별력 또는 명성 손상이라는 구체적인 결과가 객관적으로 존재하거나 그 가능성이 매우 큰 경우가 아니면 안된다”고 규정했다.

이어 “부정경쟁행위를 주장하는 이는 실제로 자신의 상표 등 식별력이나 명성이 손상됐다는 결과 또는 그 가능성에 관해 별도의 입증을 해야 하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김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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