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대 게임머니 거래 길 열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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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대법원이 인기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의 게임머니 현금 거래에 대해 무죄 판결을 한 것은 게임 시장은 물론, 게임에 대한 인식 자체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게임개발 업체들은 “온라인 게임의 게임머니나 아이템은 실제 물건이 아닌 프로그램에 불과하며 소유권이 개발자에게 있기 때문에 현금 거래는 불가능하다”는 원칙을 밝혀왔다. 시민단체와 학부모들도 “게임이나 현금 거래가 교육적으로 좋지 못하다”며 현금 거래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 반면 게임 이용자들은 “게임머니와 아이템이 이용자들의 소유이고 현실적으로 거래가 활성화된 상황에서 현금 거래를 제약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부산지법 형사합의1부는 리니지 게임의 특성을 분석해 “리니지의 게임머니 ‘아덴’은 게임산업진흥법이 정한 현금 거래 금지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제시했다. 그 근거로 ▶일정 금액을 베팅한 뒤 주사위·룰렛 게임 등의 방법으로 당첨자를 결정해 베팅 금액을 분배하는 행위가 존재하기 어렵고 ▶게임 이용자는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게임 이용자 간 대전 행위로 아덴과 아이템 등을 획득하며 ▶아덴의 거래가 게임 내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점 등을 꼽았다. 쉽게 말해 리니지의 게임머니는 도박이 아니라 노동의 대가에 가깝다는 취지다.

이 같은 법원 판단에 따라 사행성 게임의 게임머니는 현금 거래는 계속 금지된다. 하지만 검찰은 "고스톱·포커 등의 게임에서도 게임 참가자의 노력과 경험이 필요하다”며 "이번 판결로 사행성 온라인 게임이 성행할까 우려된다”고 반발했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윤선희 교수는 “승부에 우연성이 높은 온라인 고스톱이나 포커 등의 게임머니 현금 거래까지 법원이 무죄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생길 듯=리니지 게임머니의 현금 거래가 합법화되면서 게임 시장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중소 게임사들은 사업 확장의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합법적인 거래소가 생길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형 게임사들은 “새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인 환전업을 어떻게 투명화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잡아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는 비정상적으로 얻은 아이템을 사고파는 게 일반적인데, 이런 거래 자체가 합법인지 불법인지를 명확히 나누는 법은 없다”며 “만약 합법 쪽에 힘을 실었다면 게임산업법 자체도 바꾸고 과세에 대한 기준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게임머니는 중개사이트에서 100만 아덴당 8000원 선에 거래된다. 국내 온라인 게임 아이템과 게임머니의 현금 거래액은 연 1조5000억원, 이와 별도로 음성적으로 거래되는 액수도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명기·문병주·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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