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삼성전자를 꿈꾼다] 제조업 성공 사례에서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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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삼성그룹의 중국 지주사인 중국삼성의 지난해 매출(홍콩·대만 제외)은 300억 달러가 넘을 전망이다. 대부분은 삼성전자·삼성SDI·삼성전기 등 전자 관계사들이 올린 것이다. 이들은 2008년에도 매출 285억 달러를 기록하며 중국 내 전자기업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사도 현지에 진출해 있지만 지난해 예상 매출은 둘을 합쳐도 1억1000만 달러 정도다. 중국에서 삼성의 휴대전화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지만, 삼성이 금융업도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역시 드물다.

삼성·현대차·LG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에 중국은 이미 생산기지를 넘어 ‘제2의 내수시장’이 됐다. 지난해 현대차 중국 내 판매량은 57만 대로 국내 판매량(70만2000여 대)과의 격차를 바짝 줄였다.

이에 비해 금융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중국 내 외국계 은행의 총자산 중 한국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4.1%(2008년 말)에 불과하다. 증권과 자산운용은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단계다. 겹겹의 규제와 낮은 인지도가 우리 금융사들이 우선 넘어야 할 장벽이다.

금융위기 이후 규제의 강도는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다. 유광열 재경관은 “중국 금융당국의 외자은행 담당 라인도 종전에 금융시장 개방을 주도하던 인사에서 보다 보수적이고 원칙을 중시하는 인물들로 상당수 교체됐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현지 금융인도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 ‘차이니즈 스탠더드’에 맞추라는 게 요즘 중국 금융당국의 요구”라고 말했다.

현지 법인화한 은행은 2011년까지 예금에 대한 대출의 비율(예대율)을 중국 은행들과 같이 75% 이내로 끌어내려야 한다.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엄격한 기준이다. 중국 내 예금기반이 부족한 국내은행들로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또 금리 자유화가 이뤄지지 않은 데다 상품 하나를 내더라도 건별로, 지역별로 따로따로 인가를 받아야 해 신상품 도입이 쉽지 않다.

브랜드로 차별화하기도 어렵다. 한국계 보험사로는 최초로 중국에서 자동차 보험을 취급하고 있는 현대해상은 현지에서 ‘하이카’라는 브랜드를 쓰지 못한다. 보험상품에 회사 이름을 쓸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의 걸림돌도 있다. 국내 금융사들의 고질적인 단기 실적주의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잠재력이 큰 시장이지만 그렇다고 당장 수익을 내기도 어려운 시장이다. 감독당국의 영향력도 막강해 섣부른 행동으로 한번 신의를 잃으면 복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한 국내 대형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중국 내 사무소를 철수시켰다가 재진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병익 금융투자협회 전문위원은 “국내 제조업이 중국에서 성공을 거둔 건 오너십을 바탕으로 당장의 손실보다는 멀리 보고 과감하게 투자한 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근무자들이 현지에 익숙해질 만하면 국내로 돌아오거나, CEO가 바뀔 때마다 해외전략이 달라져서는 중국 시장에 안착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금융당국과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임 위원은 “아직 시장이 완전히 열리지 않은 상황이라 개별사 차원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당국 간 전략적 협의를 통해 진출의 물꼬를 트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준현(베트남·캄보디아), 김원배(인도네시아), 김영훈(미국), 조민근(중국), 박현영(인도·홍콩), 한애란(두바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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