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칼럼] 문화가 미래 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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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인들은 고속 경제성장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민족문화를 유지.발전시키는 데도 힘쓰는 것 같다.

한국에 살면서 그들의 민족문화에 대한 애착을 절실히 느꼈다. 회화.서법.조각, 그리고 건축.도예.칠기.자수 등에 한국의 전통적 특색이 강하게 배어 있다.

각 대학엔 민속음악 동아리가 있어 수시로 전통 악기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민속박물관과 민속촌은 전통문화를 매우 체계있게 정리해 놓고 있다.

21세기 들어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세계가 단일 경제권으로 통합되는 추세다. 또한 인터넷에 힘입어 정보기술과 경제력이 모든 것을 압도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사회발전의 목적인가, 경제발전의 수단이나 부속요소인가.

할리우드.월트디즈니, 각종 미니시리즈 및 마돈나로 대표되는 서양 대중문화는 코카콜라와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패스트 푸드와 함께 전세계로 진군하고 있?

이에 개도국들은 고민이 한창이다. 서양문화를 받아들여 세계화나 문화일원론에 동조할 것인가, 아니면 고유 민족문화를 견지하며 서양 등의 문화와 대화하고 교류하며 새롭게 발전할 것인가.

1980년대 이후 문화는 전세계적인 관심사였다. 유네스코는 '세계 문화발전 10개년 계획' (88~97년)을 구상했고, 92년 세계문화 및 발전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위원회는 다년간의 조사.연구 끝에 95년 '창조적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문화의 중요성을 깊이있게 다뤘다.

인간과 문화를 벗어난 발전은 영혼이 없는 발전으로 규정하고 경제발전도 민족문화의 일부임을 천명했다.

또한 문화를 발전 수단으로 보는 게 반드시 나쁘지는 않지만 경제발전의 촉진제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전과 경제는 문화라는 큰 범주에 속하는 개념이며, 여기에서 발전이란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사상적.정신적으로 강렬한 영향력을 끼치는 현상이다.

따라서 발전이나 현대화와 관련된 각종 화두는 궁극적으로 문화 가치에 관한 문제이며 사회과학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98년 유네스코는 스톡홀름에서 '문화정책의 촉진과 발전' 을 주제로 정부간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선 '문화정책의 촉진과 발전에 관한 행동계획' 초안을 상정해 각국 정부대표단의 심의에 부쳤다.

초안은 "발전이란 용어는 최종적으로 문화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고 문화의 번영을 발전의 최고 목표로 한다" 고 밝혔다.

또 "문화정책은 각종 발전계획의 기본이며 미래의 문화정책은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사실 미래 사회의 경쟁은 문화 및 문화생산력의 경쟁이며, 문화 문제는 21세기의 가장 핵심적인 화두가 될 것이다.

문화평론가 다니엘 벨도 이같이 전망했다. 세계 각국도 자국의 문화발전을 미래의 명운이 걸린 사활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장차 문화의 발전은 서양 문화 일변도의 천하통일이 아니라 세계 각국 민족문화가 서로 충돌하고 교류하면서 대화를 통해 상호간에 발전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각국이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건강한 활력소를 상호 제공해야 한다. 개도국의 문화 보존 및 새로운 발전은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특히 권장해야 마땅하다.

최근 20년 사이 중국문화도 획기적인 전기를 맞고 있다. 현대 중국의 각종 문화는 새로운 문화환경과 수요 속에서 놀라운 잠재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문화 가치를 새롭게 인정하고 문화의 지위를 경제.정치와 같은 위치에 놓고 거시적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우수한 전통을 계승, 중국의 현실에 입각한 민족적.대중적인 새 중국문화 건설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최치원(崔致遠)은 "그림 같은 산하는 바로 저긴데(襟帶江山似畵成)" 로 한국을 읊었고, 청나라 때 대학자 지윈(1724~1805)은 "시구만 읊조리면 가장 생각나는 해동인(吟詩崔憶海東人)" 으로 한국인을 떠올렸다.

이렇듯 한국과 중국은 수천년의 문화교류 역사를 갖고 있다. 이제 두 나라는 독자적 문화를 계승하면서 세계문화의 다양성과 창조에도 공헌해야 한다.

진위안푸 (金元浦/중국인민대학 교수, 한양대학교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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