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상봉] 서울서 평양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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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반세기 만큼이나 긴 하루였다. 50분이면 갈 수 있는 방북길을 50년 동안 기다린 사람들이었다.

15일 오전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을 떠나 이날 오후 평양에 도착, 그리던 혈육을 만날 때까지 이산가족 방북단 1백51명은 저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뜬눈으로 평양 첫날밤을 보냈다.

◇ 환영연회·단체상봉〓환영연회는 장재언(張在彦)북한적십자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환영인사와 건배 제의로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

이날 저녁 메뉴로는 고기 종합보쌈·생선묵·감자무침·김치·쉬움떡(일명 술떡·기지떡)·메추리알국·볶음밥·닭강냉이즙·칠색 송어구이·버섯 완자볶음·수박·과즙·인삼차 등이 등장.

북측은 만찬 도중 '반갑습니다' '아리랑' '나의 살던 고향' 등 우리 귀에 낯익은 음악을 연주, 이산가족들이 즐거운 가운데 식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

방북단은 당초 예정보다 한 시간 늦은 오후 5시 60명.40명씩 2개반으로 나눠 고려호텔 2, 3층에서 단체상봉을 했다.

이들은 반세기 만에 그리운 가족을 만나자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 많은 지난 세월 가슴 속에 맺힌 한을 한 순간에 털어내려는 듯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에 앞서 방북단 일행은 고려호텔 1층 식당에서 평양냉면·녹두지짐 등으로 늦은 점심을 들었다. 분홍색 한복 차림의 김연심(26)북측 접대반장은 "이날이 오기를 한없이 기다렸다" 며 "남쪽에서 오신 분들을 동포애적으로 뜨겁게 접대하겠다" 고 말했다.

◇ 숙소 이동·연도 모습〓광복절 휴일을 맞은 평양거리에는 이산가족 환영 현수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버스행렬을 보고 간간이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면서 이들의 평양 방문을 환영했다.

평양 거리에는 도로변 잔디에 한가로이 누워 담소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간혹 눈에 띄었다.

남측 방문단을 태운 차량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와는 달리 평양시 외곽으로 돌지 않고 개선문→김일성경기장→모란봉→조선혁명박물관→인민대학습장→노동신문사 등을 거쳐 오후 3시5분 고려호텔에 도착,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호텔 종업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 평양 순안공항 도착〓남측 방문단을 태운 항공기는 오후 1시45분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항공기가 도착하자 장재언 위원장을 비롯한 30여명의 환영객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대. 공항에는 비행기 착륙 전 소나기가 내린 듯 활주로가 군데군데 젖어 있었다.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장인 장충식(張忠植)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북측 장재언 위원장에게 "반갑습니다. 좋은 날 이렇게 공항까지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말을 건넸고, 장재언 위원장은 "잘 오셨습니다.

보고싶었습니다" 라고 화답. 이어 장충식 단장은 새골 인민학교 3학년 안유명(9)학생으로부터 환영인사와 함께 꽃다발을 받았다.

방문단은 휠체어를 탄 김금자(68)씨를 시작으로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기 시작, 북적(北赤)의 張위원장과 일일이 악수.

장충식 남측 단장은 도착성명을 통해 "우리 방문단은 남녘에 있는 1천만 이산가족 모두의 소망과 기대를 안고 평양에 왔다" 고 밝혔다.

공항에서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친 방문단은 오후 2시37분 7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숙소인 고려호텔로 향했다.

◇ 김포공항 출발〓방북단은 오전 9시30분쯤 대한적십자사에서 준비한 10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김포공항으로 출발.

배웅 나온 가족들과 호텔 관계자들은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며 환송했다.

방문단을 태운 버스는 경찰 호송차와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며 올림픽대로를 거쳐 오전 10시30분 김포공항에 도착.

장충식 단장은 출발 성명에서 "오늘을 시작으로 우리 이산가족들이 슬픔과 고통·인고의 세월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 말했다.

방북단은 낮 12시50분 북측 방문단이 이용한 북한 고려항공 IL-62M 특별기를 타고 김포공항을 출발, 역사적인 평양 상봉길에 올랐다.

이동현·기선민·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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