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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불신 받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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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득 표(인하대 교수, 정치학)

최근 잇달아 보도되는 우울한 뉴스를 접하면서 이거 정말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일보 창간 39주년 기념 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 취임 후 잘한다는 응답이 불과 9.3%, 잘한 일로 개혁 7%, 대북정책 7%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수도권 7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10가구 중 9가구가 생활형편이 어려우며, 특히 6가구는 외환위기 때보다 힘들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한 통계청에 의하면 자살 사망률이 10년 전의 2.3배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의 14.9명보다 4명이상이 늘었다고 한다.

경제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 못살겠다고 아우성들이다. 심지어 어느 중학교 축제에 갔더니 학생들이 󰡐경제가 아프다󰡑는 제목으로 국민경제의 처참한 모습을 수 십장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보았다. 몇 사람만 모이면 주된 화제가 살기 어렵다고 이민을 들먹인다. 이쯤 되면 국민의 불만지수나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정권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노 정부의 정책진가는 구름이 걷히면 알 것이라고 한다. 5~10년 후에는 미국과 대등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는 국민의 체감과 너무도 거리가 먼 안이하고 낙관적인 상황인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 정부가 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오래전에 읽었던 조셉 나이의「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를 다시 꺼내 보았다. 정부가 불신을 당하는 이유로 대통령의 형편없는 자질, 정치의 부정부패, 정부의 부도덕성과 품위 상실, 집권자의 아웃사이더 의식, 국민의 반항문화, 언론의 부정적인 논조, 정부능력 밖의 감당할 수 없는 국민의 요구와 정부의 과부하, 정당이념의 양극화, 후기물질주의 가치관과 공공기관의 권위 추락, 경제정책의 실패 등등 다양한 이유를 들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현 상황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들이다. 그런데 유독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나 정책실패의 주범을 언론 탓으로 돌리고 있다. 국무총리도 대통령을 닮아 가는지 경제위기를 언론의 부정적인 논조 탓으로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는 진짜 이유를 제쳐두고 반성은커녕 오직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심지어 반대여론에는 엄정 대응한단다.

그러면 노무현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도 조셉 나이는 제시하고 있다. 즉 끊임없이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들을 강조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국민이 원하는 가치를 강조하고 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된다는 것이다. 민심의 소재를 파악하고 대의를 존중하는 정치를 하면 되는 것이다. 청개구리같이 국민이 하지 말라면 기를 쓰고 더 밀어 붙이는 반항적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청개구리식 정치는 정부불신의 촉진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라도 대다수 국민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포기하는 민심순응 정치를 하면 된다. 한마디로 청개구리 정부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행정수도 이전, 과거진상규명, 사립학교법 개정, 국보법 폐지, 입시제도 개선, 신문법 제정 등등 국정 현안을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하면 된다. 그리고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는 과거 들추기나 편 가르기가 아니라 󰡐경제 살리기󰡑일 것이다. 먹고사는 것과 직접 관련이 없는 소모적 정쟁보다는 중학생들조차 아프다고 한 경제를 치유하는 데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둔다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기회는 항상 오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