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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앞두고 고향 실개천 눈에 어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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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5~12일 방북했던 언론사 사장단에 의해 "이산가족의 정기적 상봉과 가정상호 방문이 가능해질 것 같다" 는 소식이 13일 알려지자 이산가족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방북 명단에서 1백1번째로 뽑혀 방북의 꿈이 무산됐던 우원형(禹元亨.67)씨는 "50여년 동안 기다려온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禹씨는 상봉단에 포함된 장이윤(張二允.72)씨의 모친(1백9세)이 지난 9일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직계가족 우선 방문 원칙에 따라 방북할 기회가 생겼으나 張씨에게 양보했었다.

개성이 고향인 김동민(金東玟.서울시립대 명예교수)씨는 "아무리 화해무드지만 50년 이상 반목하고 체제 불안을 느껴 왔는데 이산가족 가정방문까지 가능해질거라니 사실이냐" 며 "정말이라면 고향 실개천에도 가보고 옛 친구도 만나고 싶다" 고 말했다.

8.15 방북단에 신청했다가 탈락한 姜재필(73.여.광주시 북구 임동)씨는 "가장 반가운 소식" 이라며 "사망한 오빠는 못 만나더라도 북에 생존해있는 조카딸의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다" 고 말했다.

상봉 방북단에 선정돼 13일 오후 방북 전 숙소로 지정된 서울 워커힐 쉐라톤호텔에 몰려든 67명의 지방 거주 이산가족들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張이윤씨는 "禹씨에게 진 빚을 다소나마 벗게 됐다" 며 "禹씨가 제일 먼저 가야 한다" 고 말했다.

한편 방북을 앞둔 이산가족들은 상봉할 혈육들에게 전달할 선물 보따리를 꾸리느라 부산한 하루를 보냈다.

북한에 있는 아내와 아들.딸을 만나러 가는 염대성(78.서울 송파구 문정동)씨는 "남으로 내려온 뒤 새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살면서도 북에 남겨둔 아내에게는 변변한 예물 하나 마련해 주지 않은 게 맘에 걸려 금가락지를 준비했다" 고 말했다.

徐순화(81.여.서울 중랑구 신내동)씨는 "북에 있는 막내 아들에게 주기 위해 운동화를 샀다" 며 "막내아들이 나막신에 버선발로 피난을 가다 '발이 시렵다' 고 해 할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헤어졌다" 고 말했다.

북쪽에 두고 온 처자식을 만나러 가는 李재걸(76.서울 서초구 서초동)씨는 "남한의 아내가 북한의 아내를 만나면 주라며 예물로 해준 금가락지를 빼줬다" 고 말했다.

이밖에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원 박노창(69)씨와 상봉을 앞둔 큰형 원길(89.서울 은평구 신사동)씨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 또다른 한을 남겼다.

지난 6월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해오던 원길씨는 지난 7일 의식을 잃고 쓰러져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다 13일 오전 5시30분쯤 숨졌다.

막내동생인 노창씨를 비롯, 밑으로 5남매의 형제를 둔 원길씨는 1950년 노창씨가 인민군에 끌려갔고, 여동생 2명이 전쟁통에 사망한 데다 나머지 두 남동생마저 최근 세상을 떠나 홀로 노후를 보내왔다.

장정훈.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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