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드골의 점성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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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에릭 하누센은 히틀러의 집권을 예언한 점성가였다. 그 인연으로 히틀러는 하누센을 종종 베를린의 총통관저로 불러 '국사' 를 논하곤 했다.

눈치없이 '제3제국' 의 몰락을 예견하는 바람에 잘나가던 하누센은 졸지에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히틀러가 하누센의 말을 좀더 귀담아 들었더라면 나치독일의 운명이 달라졌을지 모른다고 혹자는 말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처칠은 런던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여성 점성가 바버라 해리스를 즐겨 찾았다. 소련의 스탈린은 점성가 겸 최면술사였던 월프 메신의 코치를 받았다.

연합군 편에 서서 히틀러와 싸웠던 스탈린이 스탈린그라드를 동부전선의 승부처로 택한 것은 메신의 조언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프랑스의 '20세기 영웅' 인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 오랜 기간 점성가를 곁에 두고 자문을 구했다고 해서 화제다.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 최신호는 25년간 드골의 전속 점성가로 '암약' 한 모리스 바세(85)소령의 고백을 공개했다.

"군인 겸 점성가의 이중적 의무 때문에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종종 그에게 필요한 '정보' 를 제공한 건 사실" 이라고 그는 말한다.

1968년 5월 사태 이후 드골이 국민투표를 실시할 결심을 밝히자 바세는 "점괘가 안좋다" 며 말렸다. 이듬해 실시된 국민투표가 부결되면서 드골은 하야했다.

통치자들이 점성가나 역술가와 국사를 의논하는 일은 동서고금의 오랜 '전통' 이다. 기원전 3000년께 천체의 운행에서 국가의 운명을 점쳐보는 천변점성술이 메소포타미아에 처음 등장한 이래 점성술과 역술은 왕권유지의 보조수단이었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물론이고 로마의 황제들도 점성가의 충고에 귀를 기울였다. 16세기 초까지 프랑스궁정에는 '국왕을 위한 점성가' 란 보직이 존재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가끔 만났던 미모의 여성 점성가 엘리자베스 테시에는 후일 펴낸 책에서 "마치 자크 아탈리에게 자문하듯 나에게도 자문을 했다" 고 술회하고 있다.

'21세기 사전' 의 집필자인 아탈리는 정보기술.생명공학과 접목돼 점성술은 21세기 들어 더욱 번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역술가와 무속인을 찾는 정치인들이 많다고 한다. 엊그제 개각을 앞두고 역술가의 말을 믿고 전화를 기다리다 낙담한 인사들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반드시 맞는 게 아닌 줄 알면서도 정치인들은 여론조사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정치인에게 여론조사와 역술은 어떤 차이를 갖는 것일까.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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