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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평가, 서열화 부작용만 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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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성원용 교수는 자녀가 다니는 미국 초등학교의 실례를 소개하면서 "평준화된 우리 교육이 활력이 없어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면서 "평준화는 공산주의 사회 등 실패한 시스템의 전형"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입시 과열을 없애기 위해 경쟁을 유발하는 일체를 숨겨와 학교평가 결과가 공개되지 않는 것, 수학능력시험을 변별력 없이 내는 것, 특목고가 설자리를 잃은 것" 등을 예로 들며 결국 "사교육이란 것은 학교 수업의 질 저하로 생기는 것이니까 학교평가를 통해 대학들이 독립적으로 학생들을 뽑자"고 주장했다.

성 교수는 "미국의 초등학교 교사가 대학교재 이상으로 두꺼운 교과서로 열심히 가르치고 숙제 준비에도 바쁜 것을 보고"는 "시설이 아니라 선생님과 학부모회가 좋은 학교를 만들고 양질의 학교 교육이 과외를 줄인다"고 봤다. 주장의 행간을 보면 성 교수는 우리 학교 사정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또 우리의 학교 수업도 참관한 적도 없는 것 같고 학교나 교육.행정구조도 잘 모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일부 학교를 보고는 그것이 우리 학교의 현실과 달라 생경함이 있는 것 같다. 비유하자면 미국 교육(나무)을 보고 우리 교육(숲)을 대강 훑고는 우리 교육의 약방문을 써낸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처방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교사들의 일주일 수업 시수가 30시간을 훌쩍 넘는다. 게다가 교육청이나 교육부에서 닦달하는 공문 수발에다가 수업 외 잡무 등으로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렇다고 수업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교사가 미국의 공립학교 교사보다 질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공립학교 교사직은 불안정해 전공 불문에 고교 졸업자까지도 교사로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니 전반적인 교사 수준은 우리나라 교사들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미국 등 선진국 교사들은 우리나라 교사와 달리'수업교재 편성권'과 '평가권', 그리고 '수업권'까지 보장받고 있다. 미국 교사가 저렇듯 교재를 만들어 가르치는데 우리 교사는 뭐하느냐는 투의 지적은 우리 교육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연유한다. 따라서 초등학교부터 사교육 열풍이 부는 것이 교사의 실력 탓이라거나 준비 소홀 탓이라는 지적은 지극히 잘못된 진단이다. 오히려 잘못된 대학 입시제도와 학벌지상주의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성 교수의 주장은'장님 코끼리 더듬기식' 비판에 가깝다.

"우리의 고교가 평준화돼 사교육에 의지한다"는 지적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고교 평준화는 입시 과열의 부작용과 입시 부패의 방지를 위한 국민적 열망에 따른 것으로 교육의 불평등성이라는 가치보다는 평등한 교육적 가치를 존중하는 국민의 열망을 반영한 제도다. 따라서 엘리트 학생들의 수월성 교육을 위해 고교평준화 자체를 포기하자는 주장은 국민적 바람과는 동떨어진 현실인식이다.

성 교수는 "학교 평가를 제대로 해 평가 결과에 따라 대학에서도 학생을 가려 전형을 하자"며 이를 투명성의 선택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고교 차등평가로 인한 대학들의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객관성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그렇다고 학교를 평가하자는 것에 토를 달자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교장의 책무성이나 예산의 올바른 지출, 그리고 학교 운영의 투명성 확보 등을 위한 것이 아닌 고교를 줄 세우고 이를 통해 대학전형까지 서열적 학생 선발을 하겠다는 발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황선주 경북기계공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