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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제주도 여론 도청이 만드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지난 6월30일 새벽 0시28분. 제주도청 투자진흥관실 PC를 통해 송악산개발사업을 승인해준 실무부서의 입장을 옹호하는 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주도와 입장이 다른 네티즌들을 향해 "환경단체들은 사기소송이나 하는… 도민사회를 이간질하는 단체" 라는 등 거친 감정도 여과없이 담아내고 있었다.

문제는 제주도청 인터넷사이트 '제주넷' 자유게시판에 속속 오른 이 글들이 제주도공무원이 아닌 '열받은 대정청년들' 등 주민을 가장한 이름으로 등록됐다는 점. 같은날 저녁 10시15분부터 역시 똑같은 자리에서 '대정젊은이' 란 이름으로 2차례, 다음날에도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2차례 계속됐다.

단 이틀간뿐 아니다. 6월 한달간 똑같은 자리에서 올린 글들의 게시자는 그때마다 '대정싸람' .'대정젊은이' . '자랑스런 대정사람' 등 15차례나 가면을 바꿔 썼다.

하나같이 송악산개발사업 소재지인 제주도남제주군 대정읍 주민으로 위장한 것이었다. 환경단체등의 수사의뢰로 경찰이 발신지를 일부 확인한 결과 이달 중순 도청의 사이버여론조작 의혹이 제기됐지만, 책임있는 당사자의 해명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제주도는 지난달 28일 도청 인터넷사이트를 이용, 개발업자와 공모해 사이버폭력에 가담한 혐의로 韓모(45)투자진흥관이 정식으로 형사입건되자 그에게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다.

"물의를 빚어 유감" 이라는 도지사의 코멘트와 '사이버범죄 관련 공무원에 대한 문책' 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징계도 아닌 어정쩡한 조치로 적당히 마무리짓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럴 바엔 "도청이 알아서 여론을 만들어내는데 굳이 의견을 낼 필요가 있느냐" 는 도민들의 시각도 도청 인터넷사이트에 '알아서' 올려 주는 방법은 어떨까.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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