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사과 인정하자"…이총재, 지도자상 부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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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흡하지만 대통령의 사과를 인정하자. 국회법 (날치기)문제는 (대통령 보다)민주당이 풀어야 할 문제 아닌가. "

27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탄력적인 자세를 보였다. 金대통령이 민주당 당직자들을 불러 국회정상화를 강조한 직후 긴급 소집한 간부회의에서다.

그는 "다수의 강행도, 소수의 폭력저지도 있어선 안된다" 는 金대통령의 발언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수의 강행' 부분이 '대통령의 사과' 에 해당한다고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이틀 전 기자회견에서 "(국회법 날치기는)김대중 대통령의 명백한 지시가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 이라며 강경투쟁을 선언했던 때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金대통령과 민주당을 분리해 대응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핵심 관계자는 "새로운 면모" 라고 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김기배(金杞培)사무총장도 이 점을 인정하면서 "李총재는 무척 신중하다. 김종호(金宗鎬.자민련)국회부의장의 자택 잠적사태 때도 金부의장 개인을 비난하진 않았다" 고 말했다.

李총재는 정창화(鄭昌和)총무가 'JP와의 밀약설' 의 빌미를 주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도 강한 질책은 했다. 그러나 鄭총무의 사표는 반려했다.

당내에서 '이회창-JP-민주당 지도부' 사이의 3각 밀약설(자민련 단체교섭 만들어주기)을 완전 봉쇄하기 위해선 鄭총무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팽배해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李총재는 JP와의 관계개선과 민주당과의 문제를 풀기 위해 여전히 鄭총무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게 당내 일각의 해석이기도 하다.

李총재의 이런 유연한 정국대응은 "국회 파행의 한 당사자인 원내 제1당의 관리자로서 여론의 부담을 의식한 것" 이라는 게 李총재측의 설명이다.

다른 핵심측근은 보다 깊은 곳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그는 "2002년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둔 전략적 행보로 보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金대통령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야당투사적 이미지에서 이제 국가경영 지도자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치밀한 스타일 관리에 들어갔다" 는 얘기다.

그는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했던 '대통령처럼 보이기(looks like president)' 도 고려됐다" 고 했다. JP 끌어안기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이런 변화는 맹형규(孟亨奎)기획위원장의 전략팀 등에서 건의했는데, 보름 전의 김영삼-이회창 회동에서 YS의 조언도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李총재는 국회법 날치기 사태에 관한 한 "민주당 지도부가 책임을 인정하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전영기.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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